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전망대로 국정감사 이후 개헌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 여야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러나 야권이 연일 개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여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블랙홀' 발언 이후 수그러들어 개헌 논의가 더 나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개헌 논의 어떤 게 있나=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핵심 내용으로 한 현재 헌법은 1987년 10월 27일 국민투표로 확정(9차 개헌)돼 이른바 ‘87체제’라고 불린다. 헌정 이후 가장 오랜 기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헌법이다.
87체제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헌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대통령 4년 중임제다. 미국식 대통령제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제도다. 4년마다 선거를 치르되 임기는 2회로 제한되며, 대통령이 국가원수와 행정수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현재의 대통령제와 유사하다. 그러나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국회 및 국민과의 소통이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과가 1기 행정부에 집중되고 레임덕이 더 빨리 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두 번째는 이른바 이원정부제로 불리는 분권형 대통령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혼합된 형태로 국민이 뽑는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주로 외교·통일·국방 등 외치를 전담하고, 의회가 선출하는 국무총리는 행정수반으로서 내치를 분할 관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연립정부 형태를 띠기도 한다. 대통령에게는 의회 해산권이, 의회에는 총리 불신임(해임)권이 각각 주어진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독일·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는 프랑스보다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더 가미돼 있다고 평가한다.
◇개헌 외치는 정치권은 동상이몽=개헌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의원은 많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모두 차기 대선에서 확실한 독주체제를 지닌 인물이 없기 때문에 ‘보험’ 성격을 띤 개헌에 대한 지지가 많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는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 개헌 논의가 진행되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일단 여야 지도부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방중 당시 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를 언급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독일·오스트리아식 분권형 대통령제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야권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4년 중임제 개혁을 주장한 바 있다. 휴전 중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외교·국방과 행정이 분리되면 유사시 긴박한 대응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4년 중임제에 힘이 실리는 논리다.
여기에 지방분권형 개헌과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등에 대한 요구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개헌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달 9일 헌법에 ‘지방분권형 국가’ 명기를 주장했다. 또 현행 헌법의 복지·보건 등에 대한 조항이 선언적 형식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사회권적 기본권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개헌 논의, 활활 타오를까, 사그라들까=일단 국회는 개헌 논의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개헌 찬성 의사를 밝힌 국회의원은 이미 개헌안 의결정족수인 200명을 넘어섰다. 야당도 연일 개헌 군불을 지피고 있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지난 3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 정치의식이 30년 전 옷을 그냥 입기에는 너무 커졌다”며 20대 총선 전까지 개헌을 이루겠다며 구체적인 시한까지 못 박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경제 블랙홀 발언 이후 개헌 목소리가 실종된 여당의 분위기는 개헌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김 대표는 ‘개헌 봇물’ 발언 사과 이후 일절 개헌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문수 보수혁신특위 위원장과 홍준표 경남지사 등 여권 주요 인사들도 개헌론의 점화를 비판하고 있다. 과반 이상을 차지한 여당이 개헌의 가장 중요한 주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개헌 논의도 이쯤에서 정리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여의도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개헌 논쟁] 핵심은 ‘권력분산’… 계속 군불 때는 야당
입력 2014-11-01 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