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서 미안합니다” “지현이 잘 보내주세요”… 떠나는 이도, 남는 이도 ‘슬픈 팽목항’

입력 2014-10-31 03:07

즐거운 수학여행을 기대했다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황지현(17)양이 집으로 하교하는 날. 통곡소리가 잦아든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선 떠나고 남아야 할 처지의 부모들이 서로 손을 잡은 채 북받쳐 오르는 설움을 억눌렀다. 떠나는 부모는 미안해서, 남아있는 부모는 실낱같은 희망을 놓기 싫은 듯 서로 눈빛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먼저 떠나서 너무 미안합니다.”

지현이 아버지 황인열(51)씨는 그렇게 나지막이 말하며 남은 실종자 가족들의 손을 꼭 붙잡았다.

“지현이 잘 보내주세요. 우리도 곧 찾아서 갈 테니 걱정 마세요.”

남은 가족들은 황씨의 등을 떠밀며 발걸음을 재촉시켰다. 그러나 떠나고 남아야 하는 부모들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가운 시신으로나마 딸을 품에 안게 된 황씨 부부는 남은 실종자 가족들이 너무 애처로운 듯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남은 가족들의 힘없는 배웅에 그동안 슬픔을 함께 나누던 자원봉사자들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지현이 가족을 태우고 떠난 헬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고개를 떨군 채 곧장 진도체육관과 팽목항 가족대기소로 발길을 돌렸다. 아무 말도 없었다. 말을 나누며 서로가 격려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이들의 표정에선 언젠가는 맨 마지막에 남아 홀로서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외로움과 두려움도 느껴졌다.

진도체육관에는 벌써 두꺼운 겨울외투와 침낭이 놓여져 있었다. 행여 늦게라도 돌아올지 모를 가족을 기다리기 위해 남은 실종자 가족들은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난방도 되지 않는 차가운 바닥이지만 추위보다 고통스러운 건 아들딸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오늘도 팽목항 등대길에는 혹시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는 실종자 유가족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졌다. 이들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적한 팽목항의 등대길에는 긴 파도소리만이 들려왔다.

이틀 후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이 된다. 벌써 6개월 하고도 18일이 지났다. 지현이가 떠난 30일 팽목항은 더욱 찬 기운이 느껴졌다. 보배섬 진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찾아볼 수 없고 조도와 관매도를 드나드는 섬마을 주민들의 모습만 가끔 눈에 띄었다.

팽목한 너머 먼바다에선 마지막 실종자 9명을 찾기 위해 잠수사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팽목항 방파제 등대길 난간에 간신히 매달린 노란 리본들은 차가운 가을바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제 밤까지 함께 뭉쳤던 아홉 가족은 오늘 아침 여덟 가족이 됐다. 남은 가족들은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있을 아들딸이 돌아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처지다. 생일날 돌아온 지현이처럼 이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진도=김영균 기자 ykk22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