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침내 ‘미지의 영역(unchartered territory)’으로 치부돼온 양적완화를 끝내기로 했다. 미국 경기가 좋아져 비정상적인 돈풀기를 종료하는 것이지만 한국 경제주체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후속 금리 인상 시기와 속도에 따라 국내 경제가 후폭풍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경기부양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선택한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미국과 금리 격차가 벌어지면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 등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0일(한국시간) 새벽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는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했다. 2012년 9월 3차 양적완화가 시작된 지 25개월 만이다. 1차 양적완화가 시작된 2008년 11월부터 계산하면 6년 가까운 기간에 모두 4조 달러 이상이 시중에 풀렸다. 연준은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 활성화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고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연준은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0∼0.25%)으로 운용하는 초저금리 기조를 ‘상당 기간(for a considerable time)’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시장이 예상했던 부분”이라며 “크게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시장에선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과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면 외국 자본이 신흥국 시장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 금리 인상 폭과 속도가 빠를수록 자금 이탈도 급격히 일어난다. 외국 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가게 되면 신흥국 경제는 또 다시 휘청거릴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경제는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됐다”며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가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3644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31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온 경상수지 등을 근거로 경제의 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게 낙관적 전망의 근거다. 그러나 신흥국 시장이 줄줄이 무너질 경우 수출길이 막히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도 온전할 수 없다. 한국의 전체 수출 중 신흥국 비중은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만 쳐도 40%를 넘고 남미 등 기준을 넓히면 70% 수준에 이른다.
현재 정부는 경기 부양에 모든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재정적자를 늘려서라도 경제를 살리는 데 투자해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정부의 부양 의지는 강하다. 한은도 정부 시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2%로 낮췄고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 인상 신호를 켬에 따라 한은이 금리를 낮추게 되면 금리 격차 축소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어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내외 금리차가 줄고 환율에 대한 시장 예상이 원화 약세 쪽으로 바뀐다면 분명히 자본유출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리자니 저금리 시대에 빚을 늘린 가계의 막대한 이자 부담이 경제를 짓누를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 경제는 금리를 올려도 내려도 부담스러운 ‘외통수’ 상황에 처해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뉴스분석] ‘금리 딜레마’ 한은 선택은?
입력 2014-10-31 0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