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갔을 때, 그곳에서 만드는 생수 광고가 인상적이었다. 제주산 생수는 보통 지하수와 달리 땅속 깊은 암반에서 길어 올리는 심층수였다. 이 물은 지표면의 물이 암반에 도달하는 동안 불순물이 걸려져 깨끗하다고 한다. 또 심층으로 내려가면서 유익한 무기물을 함유하게 돼 다른 생수와 달리 몸에 좋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이 몸의 갈증 해소를 위해 먹는 물도 수원지가 어디냐를 따진다. 그럼 영혼의 기갈의 해소는 어떤가.
한국의 경제구조는 외국 자본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상당히 자유로워 외부의 작은 영향에도 쉽게 출렁일 정도로 취약하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드세어 상시 구조조정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정규직에 있는 사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국 중 최장의 노동시간에 노출돼 있다. 영혼의 외부 환경이 열악한 편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회는 영혼의 기갈 해소에 기여하는 대상이나 내용을 ‘영적인(spiritual)’ 것이라고 말해왔다. 설교나 기도문, 혹은 신앙적인 글을 보면 ‘영적’이란 말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도서나 언론매체들에서 이 말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세심히 살펴봤다. 놀랍게도 영적이란 말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영역을 의미한다고 막연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탈한 기분이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영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깊음(depth)’의 차원으로 이해했다. 표층의 반대는 심층(深層)이다. 깊음은 감각으로 느낄 수 있으나 차원을 달리한다. 영적인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나 경험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영적인 경험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영적인 경험은 예전에 했던 것과 같은 동작에서도 다른 마음 자세, 다른 차원을 접할 수 있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깊은 곳으로 나아감은 아무 때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깊음의 차원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대체로 영적인 것이 드러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밥을 다 해놓고 뜸이 드는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다.
깊은 곳은 인간의 의식이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창공(sky)이 아니라 하늘(heaven)에 계시고, 평범한 의식의 차원이 아닌 다른 영역에 계신다(마 6:9). 인간의 인식이나 감각을 초월한 차원이다.
예수님은 밤새워 고기를 잡았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요 21:6)”고 제안하셨다. ‘배 오른쪽’은 제자들이 밤을 새우며 수없이 그물을 던졌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전날 밤에 무수히 그물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영적인’ 마음이기에 이전과는 달랐다. 그물을 던지는 동작은 같았지만 내면의 차원이 이전과 달랐다.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 다른 엄청난 수확이었다.
초월한 곳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는 영혼의 기갈을 진정으로 해소할 수 있다. 표층의 값싼 물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
[시온의 소리-권명수] 깊음의 신비
입력 2014-10-31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