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29) 말라위 리코마에서

입력 2014-11-01 02:33
말라위의 리코마 학교에서 학생들이 위생 교육을 받고 있다. 이방인의 사랑과 관심으로 세워진 이 학교는 교육 받은 아이가 선생이 되어 돌아오는 등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말라위 작은 섬마을 리코마(Likoma)에서 벨기에인 조세를 만난 건 2010년 7월이다. 남은 인생을 이 섬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된 이유를 들었다. 20여년 전, 그녀는 홀로 배낭여행을 다녔다. 말라위 본토에서 정기선을 타고 밤새 달린 후 다시 도우선을 타는 지루한 여정 끝에 리코마에 도착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생기가 없었어요. 운명에 순응하며 삶에 찌든 표정들이었어요. 마을에 있던 큰 교회가 그나마 유일한 공동체 역할을 감당했는데 그것이 전부였어요. 둘러보니 학교가 없는 거예요. 정부도 워낙 가난하니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데다 이곳은 본토에서도 뱃길로 하루 걸리는 거리니까요.”

아프리카 여행이 끝난 뒤에도 그녀는 말라위 호수의 작은 섬마을을 잊을 수 없었다. 결국 오랜 준비 끝에 10년 만에 다시 섬을 찾았다.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설득했다. 그 뒤 설계도 직접 하고, 벽돌을 직접 생산해 쌓고, 수도시설까지 완비하니 꽤 그럴듯한 학교의 모습이 나오게 됐다. 선생님들은 외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교육 받은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어 다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목적은 물론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수도 릴롱궤로 보내고 싶었어요. 가서 더 많이 배우고, 그중 일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발전에 이바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꿈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거죠.”

조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실제로 이 학교 설립 시 학업을 했던 아이들이 10년이 지난 뒤 성인이 되어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을 하는 건 이들에게도 큰 영광이었다. 그들에게 모교에서 선생님을 한다는 건 큰 자부심인 동시에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보장된 직업이었다.

학교가 들어서자 마을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활력이 생기니 마을이 덩달아 분위기가 살아났다. 교육을 통해 얻어낸 지식과 정보들로 나라에서도 무관심했던 이 마을은 점점 기반이 잡혀갔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터넷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제는 400여명의 학생과 10명이 넘는 교사, 자원봉사자, 관리직원 등을 갖춘 제법 그럴듯한 학교의 모습을 갖췄다. 체육대회를 열고, 학교에서 필요한 다채로운 행사들도 기획해 운영해나가고 있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만의 배움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삶에 구심점이 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조세는 이 시스템에 대해 조금씩 현지인들에게 리더십을 이양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학교의 주인은 마을 사람들이기에 이들에게 운영권을 원활하게 넘겨주는 것이 계속해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음악시간, 아이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밖에서는 수돗가에서 위생 교육이 한창이었다. 수학시간에는 한 명씩 앞에 나와 문제 푸는 것이 어린 시절 우리네와 똑같았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 섬에 학교가 세워지고, 발전해가는 것은 분명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말라위에서 작은 기적의 현장을 본 건 참 벅찬 감격이었다. 조세가 나이 쉰이 넘어 꿈을 펼쳐 보이는데 필요했던 건 그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과 용기였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기엔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그리스도인인 내가 광야에서 이런 감동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묵상할 때면 나는 정말 행복하다. ‘하나님의 복음과 영광을 위해 어떤 용기를 품어 그분께 내 인생 전부를 던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삶으로 접목시킬 상상에 빠지니까 말이다. 아프리카 무명의 섬마을이 한 사람의 사랑으로 다시 살아났듯 세계 곳곳의 복음 불모지에 새 생명이 움터오는 기적을 갈망하며 진실어린 사랑을 품기를 기도한다.

문종성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