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한 레바논의 베카 계곡에는 시리아 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3년 반이 넘는 내전과 이슬람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학살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이들이다. 지난여름은 그런대로 버텨냈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난민들 사이에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베카는 겨울이면 50㎝ 이상의 눈이 내린다. 난민인 무하마드 알셰이크는 28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판자로 대충 만든 지붕에 눈이 쌓여 갑자기 무너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베카의 겨울 추위는 살인적이다. 난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난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알셰이크의 아내 바사 하세인은 “우리뿐 아니라 다른 집도 대부분 난로가 없다”며 “난로가 생겨도 연료를 구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담요라도 넉넉하면 좋겠지만 최근 부쩍 늘어난 난민들로 인해 국제사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3년 반 동안 320만명의 시리아인들이 주변국인 레바논과 터키 이라크 요르단 등으로 피신해 힘겨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사회가 지어준 난민촌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상당수는 각자 알아서 연명하고 있다.
여름에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농가에서 ‘노예노동’을 해서 하루 1500원을 벌어 겨우 끼니를 해결했다. 하지만 찬 바람 부는 겨울에는 일감도 없다. 지난해에도 한파가 불어 닥쳐 시리아와 주변국 난민촌 곳곳에서 동사(凍死) 및 아사(餓死)자가 속출했었다.
게다가 주변국 주민들의 냉대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인구 450만명의 레바논에 110만명의 시리아 난민이 유입되다 보니 현지 주민들은 바짝 경계하고 있다. 삶이 척박해지는 겨울에는 양측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안토니오 구테레스 UNHCR 최고대표는 이날 시리아 난민 지원을 주제로 독일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겨울을 잘 대비하지 못하면 숱한 난민이 죽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리아 난민 사태를 ‘세기적 재앙’으로 규정한 이번 회의에는 40개국 정부와 50개 이상의 비정부기구(NGO) 책임자들이 모여 지원 방안을 모색했지만 획기적인 대책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들은 내년부터 3년에 걸쳐 5억 유로(6670억원)를 지원키로 했지만 돈이 제대로 걷힐지는 두고 봐야 한다. UNHCR은 시리아 난민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당장 37억5000만 달러(3조9300억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직 시리아를 탈출하지 못한 사람도 수백만명에 달해 난민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고통분담’이 필요한 시점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320여만명 3년째 피난 생활… 시리아 난민 ‘겨울 공포’
입력 2014-10-30 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