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업무에 따라 취재기자, 편집기자, 교열기자, 사진기자, 그래픽기자 등으로 구분된다. 주축은 아무래도 취재기자와 편집기자다. 뉴스를 수집해서 기사를 쓰는 게 취재기자의 일이라면, 작성된 기사를 선별해 지면에 배치하고 제목을 다는 게 편집기자의 일이다. 신문사는 오랫동안 취재기자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신문에서 편집은 쓰기에 비해 다소 부차적인 역할로 인식돼 온 게 사실이다.
‘에디톨로지(editology)’의 저자 김정운 박사가 이런 신문사 사정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당장 편집자 중심으로 조직을 재구성하라고 조언하지 않을까 싶다. 문화심리학자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인 김 박사는 요즘 편집에 ‘꽂혀’ 있다.
김 박사는 MBC ‘무한도전’의 인기 비결을 자막의 힘으로 분석한다. 그는 “김태호 PD가 만드는 자막은 이제까지 우리가 봐왔던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면서 “수십 대의 카메라가 녹화한 화면을 오직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해내야 하는 PD나 영화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편집자”라고 평가한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죽자 ‘아웃라이어’ ‘블링크’ 등을 쓴 말콤 글래드웰은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잡스의 천재성은 디자인이나 비전이 아닌, 기존의 제품을 개량해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편집 능력에 있다”고 평가했다. 잡스는 2010년 한 컨퍼런스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며 편집자에게 권력이 이동하고 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편집공학’이라는 개념을 창안한 일본 지식인 마츠오카 세이고는 일본을 ‘편집국가’로 정의한다. 일본 문화에는 특별한 주제가 없고 ‘이이토코도리’, 즉 ‘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는 일본식 문화 편집 방식이야말로 일본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게 세이고의 주장이다.
창조의 비결로서의 편집(editing)이란 주제는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것이다. 어떤 제품이나 지식, 정보, 장르, 예술 등이 새로 생겨나면 그동안 주로 ‘…이 창조됐다’고 설명하면 됐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창조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따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편집이란 개념이 주목을 받게 됐다.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콜라보레이션, 큐레이션 등 요즘 새로 나오는 개념들 역시 크게 묶어 편집이란 주제의 변주로 볼 수 있다.
‘에디톨로지’는 한국인이 처음으로 펼치는 ‘편집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TV 프로그램 진행자, 교수, 학생 등으로 계속 변신하며 세상의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 탐구하고 발언해온 저자가 지난 8년여간 매달려온 주제라고 한다. 왜 편집인가?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창조는 편집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세상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지식인은 편집인이다. “이제 지식인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에디톨로지’는 편집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다. 편집이 세상을 구성해 왔으며, 창조의 가장 중요한 방법론이라는 걸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편집으로 세상을 읽어낸다. 예컨대, 서양미술에서 인상파의 등장을 “‘재현의 시대’가 끝나고 ‘편집의 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분석한다. 재현의 한계, 즉 미술이 실제를 똑같이 재현할 수 있다는 원근법적 신념을 포기한 인상파 화가들이 기존의 관점을 해체하고 대상을 재구성했다는 것이다.
그의 눈으로 보면 개념도 편집이고, 공간도 편집이고, 인간의 마음마저 편집된 것이다. 근대적 가족 개념의 등장과 관련해 “생산 단위로서의 가족이 해체되고, 애착 관계로서의 가족이 새로 편집되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책에는 독창적이고, 과연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문장들이 빼곡하다. 날카롭고 때론 통쾌한 통찰이 곳곳에서 튀어나와 독자를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글이 쉽다. 김정운은 단문을 쓰고 속도감 있게 끌고 가며, 사례와 비유를 풍부하게 동원한다. 물론 언제나 가장 빛나는 건 그의 유머다. 다만 본격적인 편집학이라고 보기엔 다소 헐렁하다. 저자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그는 3년 전부터 매년 두 달씩 사진작가 윤광준과 함께 유럽을 방문해 바우하우스의 흔적을 좇고 있다고 한다. 그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바우하우스를 “재현의 시대에 얻어진 인류의 모든 성과를 해체하고, 창조적 편집 가능성을 모색하는 ‘편집학교’였다”고 평가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는 편집이다
입력 2014-10-31 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