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한 컷] 경제성장에 잃어버린 우리 고향의 옛모습

입력 2014-10-31 02:32
사진작가 김운기(77)에게 고향과 어머니는 동격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고향(충북 청주)은 옛 모습을 잃었다. 어머니, 농촌, 어린시절 등 3부로 구성된 이 사진집은 1960∼70년대의 농촌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기면 고무신을 정리하는 흰머리의 어머니, 30년 동안 화전을 가꿔온 여인,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 나물 캐는 소녀 등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살았던 불과 40∼50년 전 우리네 모습이 펼쳐진다. 이 책은 한평생 발품을 팔아 사진을 찍어온 노사진가가 고향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바치는 비망록이다.

김운기는 사진계에서 생소한 인물이다. 이 책을 펴낸 눈빛출판사는 “고도경제성장과 압축성장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보여주는 책”이라며 “사진학을 전공하거나 유학을 다녀온 분은 아니지만 한국 사진의 이론과 미학을 몸으로 실천해온 분”이라고 밝혔다. 동네 사진관에서 어깨 너머로 사진을 배운 그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가 이농과 개발로 붕괴될 마을의 풍경을 흑백으로 기록했다. 농촌과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앵글은 토속적이며 독특한 조형미를 갖고 있다.

‘초가마을 밭갈이’(사진)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은 작가가 1977년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덕 압실마을에서 찍은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초가집들을 배경으로 작가와 친분이 있는 안희종씨가 밭을 갈고 있다. 멍에를 몸에 걸친 소와 쟁기로 밭을 갈아엎는 농부의 모습에서 지난시대의 고단함과 뿌듯함이 함께 느껴진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