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들, 지배구조 개선 시늉만 낸다

입력 2014-10-30 02:11

흔히 ‘재벌’로 불리는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이 더딘 걸음을 보이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이 정체되고 있고, 전환을 한 대기업집단도 평균 10개가 넘는 계열사를 지주회사 체제 밖에 두고 있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은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 26개 중 삼성과 현대차 등 6개 집단은 순환출자 고리와 금융계열사를 모두 보유하고 있어 지배구조 개선이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사 전환 정체, 전환해도 ‘무늬만’ 지주회사=29일 공정거래위원회의 ‘2014년 지주회사 현황 분석결과’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전체 지주회사 수는 132개로 1년 전에 비해 5개 늘었다. 그러나 이 중 대기업집단 소속 지주회사는 31개로 오히려 1개가 줄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집단은 총수 있는 대기업집단보다 단순하고 투명한 출자구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반 대기업집단이 평균 4.92단계의 출자구조를 가진 반면 지주회사는 평균 2.93단계에 불과했다. 지주회사 전환 대기업집단의 평균 부채비율도 25.4%로 전체 대기업집단 평균(103.7%)보다 크게 낮았다.

대기업집단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1999년 도입된 지주회사 제도가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고 공정위는 평가했다.

그러나 지주회사로 전환했지만 체제 밖에 주요 계열사를 두고 있는 대기업집단의 행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대기업집단의 전체 계열회사 596개 중 184개는 총수일가 등이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지배하고 있었다. 전체 계열사 대비 지주회사 체제 내 계열사 비중을 나타내는 편입률은 69.1%로 2010년(73.3%) 이후 계속 떨어지고 있다. 공정위 김성하 경쟁정책국장은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회사에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회사가 상당수 있고 내부거래 비중도 높다”며 “이들 일가의 부당한 부의 이전에 대한 감시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간금융지주회사 생기면 달라질까=정부는 지난해 경제민주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방안을 제시했다. 현재는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자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제도가 도입되면 지주회사의 금융사 보유를 허용하되 금융자회사가 일정 규모 넘어갈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치해 산업과 금융 사이에 방화벽(firewall)이 생기게 된다.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 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는 조속한 입법을 통해 금융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집단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과 현대차가 곧바로 지주회사로 전환되기는 힘들 전망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삼성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고, 삼성보다 훨씬 두꺼운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