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 총선 결과, 아랍의 봄 종언? 민주주의 진전?

입력 2014-10-30 02:07

지난 주말 실시된 튀니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야권 세속주의 정당 니다투니스(튀니지당)가 내년 초 연립정부를 수립할 뜻을 밝혔다. ‘아랍의 봄’의 진원지이자 사실상 유일한 ‘현재진행형’ 국가 튀니지에서 중동·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살려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니다투니스의 지도자인 야권 유력 정치인 베지 카이드 에셉시(87·사진)는 28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절대 다수석을 차지하더라도 혼자서 정부를 꾸릴 수 없다는 결정을 이미 내렸다”며 연립정부 구상을 천명했다고 현지 언론과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니다투니스는 전체 217개 의석 중 38%에 해당하는 83석을 확보해 원내 다수당이 됐다. 니다투니스 측은 선거운동 기간 중 집권당 엔나흐당을 포함한 이슬람주의자들과도 협력하겠다고 누차 밝힌 바 있다. 에셉시는 이날도 “밀접한 관계를 맺어 온 민주적 단체들과 함께 정부를 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정부 구성은 대선 결선투표가 마무리되는 내년 1월 꾸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튀니지 대선은 내달 말 치러질 예정이며 과반 득표자가 없을시 상위 득표자 2명이 결선투표에 나선다.

2011년 아랍 독재정권의 연쇄 몰락을 촉발했던 아랍의 봄은 튀니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원점으로 회귀한 상태다. 튀니지와 함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던 이집트는 민선 무르시 정권의 실각 이후 엘시시 군사정권이 출범해 무늬만 민주주의로 전락했다. 시리아는 여전히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리비아나 예멘 등도 독재정권 붕괴 이후 계속돼온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튀니지 총선 결과로 ‘아랍의 봄은 종언을 고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니다투니스의 주축 세력이 2011년 ‘재스민 혁명’으로 축출된 벤 알리 정권의 입헌민주연합(CDR)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또 독재정권에서 국회의장 등 요직을 맡아온 당 대표 에셉시는 대선 유력주자로도 거론되고 있어 집권 후 독재정치가 부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민주적 정권교체 과정에서 희망을 보는 시각이 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단순히 과거 정권의 인물이 재등장한다는 이유로 비관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튀니지는 민선 정부의 실각과 총선,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근 국가들과는 달리 쿠데타나 내전 등 무력 충돌에 휩싸이지 않았다. 유력 정당들이 공히 연립정권의 필요성과 협력을 공언하며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군사정권에 대한 96.9%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서방 국가들의 비웃음을 샀던 이집트 대선과는 달리 미국 CNN 등 서방 언론들도 튀니지 총선 결과에 대해 ‘아랍 민주주의의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유럽 외교관계이사회’의 앤서니 드워킨 연구원은 “민주주의가 아랍 세계에서 뿌리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강력한 신호이자 진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