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시정연설 후 국회에서 여야 지도부와 회동했다. 지난해 9월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청와대 3자 회동 이후 1년1개월여 만이다. 늘 치고받고 싸우기나 하는 정치권 행태에 이골이 난 국민들은 모처럼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한 테이블에 앉아 흉금을 터놓고 국정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듯하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회동 후 밝힌 15개항의 발표문은 ‘세월호 3법’ 이달 내,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 등 기존 여야 합의사항을 재확인한 수준으로 눈에 띄는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지난해와 달리 올해 회동이 파행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작지 않다. 하물며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최대공약수를 찾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결코 작은 성과라고 할 수 없다. 세월호 정국을 거치면서 실종된 대화와 타협의 정치 복원을 알리는 선언인 셈이다. 우리 정치가 어제처럼만 돌아간다면 국민들이 한시름 놓겠다.
이번 회동은 우리 정치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로 남는다. 대통령이 2년 연속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 전례가 없는 데다 시정연설 후 여야 지도부를 만나 국정 전반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시정연설은 나라의 내년 살림과 나아갈 바를 국민에게 보고하는 중요한 행사다. 그런데도 역대 대통령은 취임 첫해 한 차례만 하거나 아예 국무총리로 하여금 대독케 했다. 대통령이 이 같은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대통령과 입법부의 수평적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회동은 대통령 시정연설이 정례화되고 시정연설 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이 관례로 자리 잡는 계기가 돼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선 대통령과 국회의 회동이 잦을수록 좋다”면서 “비판할 건 비판하되 협조할 건 협조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먼저 국회에 마음을 여니 야당이 대통령을 존중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여당 또한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면 야당의 주장을 폭넓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양경찰 해체에 반대하는 야당 주장이 대통령 의사에 반한다고 해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해석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야 박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통해 호소한 경제 살리기와 각종 민생·개혁 법안의 차질 없는 처리가 가능하다.
경제 살리기와 민생·개혁입법 처리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동상이몽이다. 공무원연금 개혁만 해도 야당은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여야 간 상당한 온도차가 존재한다. 투쟁을 통해서는 결코 이 간극을 좁힐 수 없다. 신뢰를 쌓고 이견을 해소하는데 대화 이상 좋은 수단은 없다. 그리고 국민 눈높이로 보면 그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사설] 만남 그 이상의 가능성 보여준 10·29 회동
입력 2014-10-30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