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부모는 아이들이 집에 있으면 불안해한다. 학원에 가 있거나 학교 자습실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와야 대견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이 쉬는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일단 어디에선가 아이가 책과 씨름하고 있어야 성적이 오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괜히 눈치 없이 부모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좋은 소리 못 듣는다.
과도하게 공부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
실제 대한민국에서 어린이로 산다는 건 만만치가 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5월 어린이날을 맞아 발표한 ‘어린이들의 문화 및 생활실태 보고서’를 보면 방과후 우리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단연 학원이다. 무려 42.8%의 초등학생들이 학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고, 이 중 60.6%는 2시간 이상을 학원에 있는다고 했다. 학원에 가지 않는다고 대답한 어린이는 19.8%에 그쳤다. 더욱이 33.7%가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하루 2시간 이상, 38.2%는 1시간 이상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조사는 전국 초등학교 5, 6학년 1955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누가 봐도 우리 아이들이 과도하게 공부에 매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부시간은 입시와 맞물리는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특히 학원가에서는 선행학습이 여전히 주요 학습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학교 1학년이 2학년 수학을 미리 배우고 중3이나 고1 수학까지 공부하면 부모는 자랑스러워하고, 주변의 다른 학부모들은 시샘을 감추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 이 학습방법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우리 아이들의 ‘뇌’에 마구 쏟아 붓는 주입식 공부 말이다. 최근 미국 대학 연구팀은 두뇌를 쉬게 하면서 앞서 배운 것을 떠올려보도록 하는 방법이 학습능력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앨리슨 프레스턴 교수는 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보고서에서 “뇌 휴식이 어떻게 추후 학습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처음으로 알아냈다”면서 “두뇌를 쉬게 하는 동안 기억을 되살리면 이 기억이 더 확고해지면서 추후에 있을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과거의 기억은 새로운 기억에 지장을 준다고 믿어왔다. 연구팀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어린아이에게 확대해 시행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의 신뢰성을 떠나서라도 이제 어른들은 우리 아이들의 뇌 건강을 적극적으로 신경 쓸 때가 됐다.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교 1, 4학년과 중1, 고1 학생 211만9962명에 대해 ‘학생 정서행동 특성검사’를 실시한 결과 15만2640명(7.2%)이 지속적인 관리와 전문기관 의뢰 등의 조치가 필요한 ‘관심군’으로 드러났다. 이 중 자살생각 등 위험 수준이 높은 ‘우선관리’ 학생도 4만6104명에 달했다.
우리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사회적 화두가 돼야 하는 이유다. 지금처럼 몰아붙이다가는 어느 순간 ‘댁네 아이 정신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날이 올 수 있다.
주말엔 하고 싶은 일 하도록 배려했으면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아이들의 뇌가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안 하나. 많은 어른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심히 일하고 토, 일요일을 쉬 듯 아이들에게도 ‘주2일 뇌 휴무제’를 주면 어떨까.
이른바 ‘주말에는 학원 보내기 및 공부 금지’ 캠페인이다. 어른들은 주말에 쉬지 못하면 업무에 지장을 받는다고 아우성치면서 아이들의 뇌에는 왜 쉴 틈을 주지 않는 것인가.
1주일에 하루 이틀만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자.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음악을 몇 시간씩 듣거나 영화를 보고 야구와 축구를 하고 다녀도 눈치를 주지 말자. 이때도 체험 프로다 뭐다 해서 ‘휴식 겸 공부’를 병행하려는 얕은 수를 쓰는 부모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게 잘 지켜지는 가정은 주말에 아이가 책상에 붙어 있으면 신경이 쓰일 게다. ‘지금 머리를 쉬어주지 않으면 월요일부터 공부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런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한민수 문화체육부장 mshan@kmib.co.kr
[데스크 시각-한민수] 주2일 뇌 휴무제
입력 2014-10-30 02:30 수정 2014-10-30 1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