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증거조작’ 국정원 직원·협조자 모두 징역형

입력 2014-10-29 03:15

사상 초유의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 직원 및 협조자들에게 모두 징역형이 선고됐다. 중국대사관이 지난 2월 ‘검찰 측 증거들은 위조된 것’이라는 공문을 보내면서 파문이 불거진 뒤 8개월여 만에 나온 판결이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증거 조작 혐의를 인정하면서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한 죄가 무겁다”고 엄중히 지적했다. 국정원은 간첩사건 수사에서 증거 조작을 자행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됨에 따라 신뢰도에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김우수)는 28일 증거 조작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48) 과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국 이모(54) 처장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객관적인 ‘적법 증거’들을 충실히 검토한 결과 피고인들의 혐의가 대부분 인정된다”며 “이들이 국정원에 막중한 권한을 부여한 국민들의 신뢰를 훼손시켰다”고 지적했다.

김 과장은 이번 사건에서 위조로 판명된 문서 8건 중 모두 6건의 조작에 관여하거나 주도했다. 이 중 문서 4건은 앞서 간첩 혐의를 받은 유우성(34)씨의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됐다. 선양총영사관 이인철(48) 영사와 대공수사국 권모(51) 과장은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 과장과 함께 증거 조작을 공모한 제1협조자 김모(62)씨는 징역 1년2개월, 유씨의 출·입경기록을 위조한 조선족 제2협조자 김모(60)씨는 징역 8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국정원은 ‘대선 개입 댓글 사건’에 이어 국정원 고유 분야인 대공수사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 블랙 요원들과 조선족 협조자들 간 신뢰관계에 금이 가면서 국정원 대공수사에도 일부 차질을 빚게 됐다.

피고인들은 지난해 8월 간첩사건 피고인 유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유씨 혐의를 항소심에서 입증하기 위해 각종 증거들을 위조한 혐의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이 줄줄이 “송구스럽다”며 사과의 뜻을 밝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서천호 당시 국정원 2차장은 이번 사건으로 옷을 벗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수그러들었던 국정원 개혁론이 야권을 중심으로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 이후 고유 분야인 대공수사권을 검·경에 이관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유씨 측 변호인은 “사법시스템을 뒤흔든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