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에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선출 직후 서울 동교동을 찾아 만난 이후 2년2개월 만이다.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두 여성의 만남은 박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 여사의 남편 김 전 대통령을 매개로 이뤄졌다. 이 여사가 지난 26일 박 전 대통령 서거 35주기를 맞아 처음으로 추모화환을 보낸 데 대한 감사 차원의 초청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이 여사의 회동에는 보다 깊은 의미가 있다. 1960년대부터 이어져온 산업화 및 민주화 세력, 영남과 호남의 상징이었던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간 ‘화해의 재연’이라는 함의를 내포한다.
박 대통령은 사실 10년 전인 2004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 전 대통령을 찾은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아버지 시절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으시고 고생한 데 대해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과거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며 “박 대표가 국민들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화답했다. 김 전 대통령은 훗날 자서전을 통해 이를 ‘진정한 화해’였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박 대통령과 이 여사는 이날 ‘통일의 꿈’을 이야기했다. 박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기반 구축을 주요 국정과제로 선언했고, 김 전 대통령은 통일을 위한 ‘햇볕정책’을 천명했던 만큼 통일에 대한 공감대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접견에서 “여사님께서 통일에 관심이 상당히 많으시다. 북한 아이들을 걱정하면서 털모자도 직접 짜시고 목도리도 짜시고 준비하신다고 들었다”며 “북한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과 정성, 사랑이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북한 어린이 지원을 위한 자신의 방북 허가를 직접 요청했다. 이 여사는 “북한 아이들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 추울 때 모자와 목도리를 겸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짰다”며 “그래서 북한을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언제 한번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고 답해 이 여사의 방북 허용을 시사했다.
이번 회동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 50여분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 여사는 전날 밤 친필로 쓴 ‘평화통일’ 휘호(사진)를, 박 대통령은 계영배(戒盈杯·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를 각각 선물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이희호 여사 "북한 한번 갔다 왔으면…" 朴 대통령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입력 2014-10-29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