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모(24)씨는 최근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세월호 관련 뉴스를 검색하다 페이스북 계정으로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한 네티즌이 페이스북 계정을 타고 들어와 담벼락에 “꺼져라 너 같은 빨갱이들은 죽어야 한다”며 김씨를 비난했다. ‘빨갱이’란 말에 화가 난 김씨는 글을 쓴 네티즌을 경찰에 고소했다. 김씨처럼 인터넷 댓글 때문에 상대방을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세월호 참사나 삐라(대북전단) 살포 논란 등을 계기로 ‘진영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비방 수위가 높아진 게 첫 번째 원인으로 꼽힌다. 수사기관이 경미한 사안도 무리하게 명예훼손이나 모욕 혐의를 적용해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인터넷 명예훼손 및 모욕 혐의로 피의자를 조사한 건수는 2012년 4710건(5087명)에서 지난해 4570건(4908명)으로 줄었다가 올해 1∼9월 4458건(6067명)으로 급증했다. 경찰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영향으로 인터넷 댓글에서 상대를 비방하는 글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농성을 벌인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하하는 글이 많았고, 진보-보수 진영의 사회적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온라인상 의견 충돌이 명예훼손 고소전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늘었다.
사이버 명예훼손 급증 현상은 ‘좌좀’(좌파좀비라는 뜻으로 진보 진영을 비하하는 말), ‘일베충’(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를 벌레로 비하하는 말) 등 상대방 인격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언어가 일상화된 영향도 크다. 사이버 공간이 건전한 논쟁의 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명예훼손과 모욕을 나누는 기준은 있지만 판단은 그때그때 다르다. 2010년 6월 부산에서는 온라인 게임 채팅방에서 “대머리”라며 상대방이 자신을 비난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신체적 특징을 묘사한 것이어서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2심은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고 대머리가 아닌데 대머리라고 한 것은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머리란 표현 자체가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이처럼 명예훼손과 모욕은 ‘구체적 사실을 제시했는가’에 따라 갈린다. 명예훼손은 구체적 사실에 근거해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위이고, 모욕죄는 단순 욕설 등 근거 없이 추상적 내용을 언급한 경우에 해당한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기획]‘이념갈등’ 사이버공간 고소·고발 급증
입력 2014-10-29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