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생명·화재 지분매입 추진… 그룹핵심 고리로 경영승계 길닦기

입력 2014-10-29 02:2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 0.1%를 취득하려고 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경영권 승계 등 지배구조 문제가 다시 떠올랐다. ‘0.1%’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삼성그룹에서 금융계열사들이 차지하는 지위는 독특하다. 특히 삼성생명은 그룹 전체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는 계열사다. 삼성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을 축으로 얽히고설킨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생명 지분 20.76%를 지렛대로 핵심인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다. 이 회장 일가가 직접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5%가 채 안 된다.

삼성그룹은 28일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주식을 각각 0.1% 취득하기 위해 금융 당국의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 주식을 100% 매입하기로 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지분 7.7%를 팔았다. 이후 세금을 제외한 매각대금 252억원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주식을 사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삼성생명, 삼성화재 주식을 보유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재 지배구조에서 0.1%가 갖는 무게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 회장(20.76%)이다. 이어 제일모직(19.34%)이 2대 주주로 올라있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5.10%를 소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따라서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생명을 장악할 수 있다.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으면 지배력이 한층 강해진다.

시장에서는 0.1%라는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상징성에 주목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1%를 갖고 있다. 자사주를 제외하면 최대주주인 셈이다. 이 회장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손 안에 둘 수 있는 ‘열쇠’다.

삼성생명 최대주주 자리나 특수관계인에 이름을 올리면 그룹 전체 경영권을 가시권에 두게 된다. 이 부회장이 0.1%를 취득하면 이 회장의 특수관계인에 오르게 된다. 특수관계인이 된 뒤에는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을 때에만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삼성생명 최대주주 지위를 물려받기 위한 과정 중 하나로 0.1%라는 상징적 지분을 인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화재의 경우 삼성전자 주요 주주이기 때문에 삼성화재 지분을 갖게 되면 우회적으로 삼성전자 경영권을 두텁게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앞으로 있을지 모를 지배력 변동에 대비하려는 사전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상속 때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이 삼남매에게 분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지분 전체를 받으면 문제가 없지만 3조각 등으로 나뉘게 되면 제일모직이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이것만으로도 그룹 지배구조가 복잡해진다. 더욱이 제일모직이 지주회사로 전환될 경우 일반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도록 하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를 받게 되면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중간 금융지주회사 도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금융계열사를 매각해야 할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지배력이 취약해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리 삼성생명 등의 지분을 사들여 지분율을 높여두면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으면서 지분율이 낮아지는 문제를 방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