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가명·10)군은 두 달 전쯤 엄마와 헤어졌다. 4차례나 탈북한 엄마는 그를 놔두고 어디론가 떠났고, 조선족 출신의 아버지는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 진숙(가명·9)양도 비슷한 신세다. 조선족 아버지와 탈북한 엄마는 몇 년 전 진숙이를 놔두고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지난 26일 오후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A시 외곽의 B고아원. 17명의 원생 중 경철이나 진숙이 같은 ‘탈북 고아’가 절반이 넘는다. 동네의 유일한 소학교에는 전교생 50여명 가운데 탈북 고아만 20명이 넘는다고 고아원 관계자는 귀띔했다.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상대방과 눈을 잘 맞추지 못했고, 눈치를 많이 살폈다. 묻는 말에도 좀처럼 대꾸하지 않았다. 그들을 돌보는 이들은 교회 전도사 출신의 원장과 두 명의 여성 권사, 집사뿐이다. 2006년 일본 교포 출신 독지가의 도움으로 문을 연 고아원은 초창기만해도 조선족 출신 고아들을 돌보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탈북 고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동네 주민들이 ‘길가에 안면 없는 애들이 돌아다닌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씩 데려왔어요. 많을 때는 30명 가까이 될 때도 있었지요.” B고아원 원장 얘기다.
탈북 고아들이 거리에 나돌게 된 배경은 대략 이렇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떠돌다가 생계를 위해 결혼해 자녀를 낳은 뒤 도망쳐 나오거나 한국으로 떠나면서 남겨진 경우가 많다.
조선족 출신의 아버지마저 한국 등으로 일하러 떠나면서 홀로 된 아이들도 적지 않다. 탈북 고아들의 정확한 통계는 확인할 수 없다. 훈춘·투먼·룽징·허룽 등 북한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적게는 1000명, 많게는 3000명 정도 될 거라고 추산할 정도다.
탈북 고아들을 돕는 중요한 후원처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라고 현지 사역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중국 선교사들이 최근 강화된 여권법과 당국의 단속 등으로 추방당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활동이 위축됐다”면서 “여기에다 한국교회들의 재정 여건이 불안해지면서 후원이 끊기거나 감소한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 사이 2∼3배 오른 현지 물가 때문에 고아원들의 형편은 더 빠듯해졌다. 일례로 7년 전 1t에 300위안(약 5만1000원) 정도였던 석탄 가격이 이달 초 650위안(약 11만1000원)으로 배 넘게 치솟았다. 이 때문에 B고아원은 수 년 전부터 고아원 주변에 텃밭을 만들어 감자 배추 당근 무 같은 작물을 재배해 식량으로 충당하고 있다. 조선족자치주 내 일부 고아원의 경우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문 닫은 곳도 여럿 있다고 했다.
4년 전부터 탈북 고아들을 돕고 있는 K목사는 "성인 탈북자들이나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들보다 더 불쌍한 이들이 중국에 버려진 탈북 고아들"이라며 "한국교회가 이들을 보듬는 일에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옌볜=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겨울 앞둔 옌볜조선족자치주 탈북 고아들 찾아가보니…
입력 2014-10-29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