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부동자금 750조… 또 사상 최대

입력 2014-10-29 02:43

정책, 재정, 통화를 총동원해 경기를 살리려는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투자처를 찾지 못한 단기 부동자금이 처음으로 750조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리 수준이 높아 투자를 꺼리는 것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돈이 허공을 맴돌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을 통해 돈이 돌아야 기업과 가계에도 숨통이 트인다.

28일 금융투자협회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757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시중에 부동자금이 많다는 건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다. 마땅히 돈을 굴릴 데가 없으니 대기 자금이 늘어나는 것이다.

금리를 낮춰 ‘돈 풀기’로 경제 심리를 일으켜보겠다는 정부의 저금리 기조 탓에 은행 상품들은 고금리를 원하는 투자자들에겐 매력적이지 않다. 만기 1년짜리 기준으로 국민은행 국민수퍼정기예금과 신한은행 신한S드림 정기예금, 우리은행 우리유후정기예금은 이자가 연 2.1%이고 하나은행 고단위플러스 금리확정형은 2%다.

코스피는 정부의 경기 부양으로 7월 말 2076.12까지 오르며 ‘최경환 효과’라는 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반짝하고 말았다. 이후 유럽 등 세계 경기둔화 우려와 기업들의 3분기 실적 저조로 최근 1900선이 위협받기도 했다. 대외 불안요인과 기업들의 실적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어 국내 증시는 상당 기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당초 이달 말까지 주식시장 발전방안을 내놓을 계획이었지만 이날까지 내용을 확정짓지 못했다. 증시 부양책이 나올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정부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우리 증시의 체질 강화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시장도 정부의 대출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강남 등지에서만 꿈틀거리는 조짐을 보일 뿐이다. 절대 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을 감안한 ‘대세 하락’ 우려가 시장 참여자들에게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은 오히려 가계부채 증가가 우리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만 키우고 있다.

단기 부동자금 중 현금은 59조원에 이르렀고 요구불예금 133조원,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352조원, 머니마켓펀드(MMF) 61조원, 양도성예금증서(CD) 17조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37조원, 환매조건부채권(RP) 9조원 등을 기록했다.

6개월 미만 정기예금 67조원과 증권사 투자자예탁금 16조원을 합하면 시중에 대기 중인 단기 부동자금의 윤곽이 드러난다.

전체 단기 부동자금은 2008년 말 539조5000억원에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2009년 말 646조6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정체를 보이다가 지난해 말 712조8000억원으로 다시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내 6월 말 736조원, 7월 말 738조5000억원에서 8월 말 757조4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