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득(가명·53)씨는 눈물을 머금고 치킨집을 접기로 했다. 지난해 외국계 시중은행에서 명예퇴직한 뒤 올 2월 퇴직금으로 서울의 한 아파트 상가에 치킨집을 차렸다. 그러나 올해 경제는 김씨에게 절망만 가득 안겼다. 개업 당시 중국 대륙에 ‘치맥’ 열풍을 불러일으킨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볼 것으로 기대했다. 홍보를 위해 원가 수준인 반값 세일을 펼쳤던 첫 달엔 그럭저럭 수지를 맞췄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터진 4월과 직후인 5월엔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16강에만 오르면 매출도 좀 회복되겠지’ 싶었던 6월 월드컵 때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성수기인 여름도 신통치 않았다. 9월 아시안게임에 다시 기대를 걸었지만 배달전화에 불이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자랜드, 테크노마트 등 전자상가엔 비어 있는 매장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불경기를 이기지 못한 점주들이 휴폐업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둘러싼 혼란이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소 의류봉제업체들도 불경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200여곳이 집중된 전북 익산 일대에는 주문량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줄어 영세업체 상당수가 문을 닫았거나 휴업을 준비 중이다. 패션의 중심지인 동대문 상권에 납품하는 서울 창신동 일대도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렇듯 급격히 위축된 소비심리는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10월 소비자 동향조사 결과 소비자들의 경제상황 인식을 종합적으로 지수화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5로 전월보다 2포인트 떨어졌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지난 5월과 같은 수준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1주일이 멀다하고 각종 경제 활성화 대책을 쏟아냈지만 별무효과다. 한은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렸지만 소비심리는 요지부동이다.
CCSI는 지난 2∼4월 108을 기록했지만 세월호 참사 여파로 5월에 105로 떨어지고서 6월에 107로 올랐다가 7월에 다시 105로 추락했다.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기준금리 인하 등에 힘입어 8월에 107로 올라섰으나 9월에도 107에서 멈춘 채 세월호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다 이번에 다시 뒷걸음질한 것이다. CCSI는 2003∼2013년 장기 평균치를 기준(100)으로 삼아 이보다 수치가 크면 소비심리가 장기 평균보다는 낙관적이고 이보다 작으면 비관적이라는 의미다.
소비자들이 뚱해 있으니 이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의 경기 전망도 덩달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3∼17일 중소 제조업체 136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1월 중소기업 업황전망 건강도지수(SBHI)가 전월보다 6.6포인트 내린 87.1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개월 만에 다시 하락한 것이다.
경기 전반이 무기력해지자 저잣거리엔 부동자금만 넘쳐난다. 초저금리로 돈이 남아 주체할 수 없는데도 가계도 기업도 정부도 이미 감당 못할 정도로 버거워진 빚에 허덕이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지난해 말 현재 개인과 기업, 국가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세계경제포럼(WEF) 기준의 채무부담 임계치보다 10∼46% 포인트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의원은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과도한 채무 부담에 따른 부채 조정이 이뤄지면 소비와 투자의 둔화가 심해진다”고 우려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소비 다시 꽁꽁… ‘백약이 무효’ 지갑 더 닫아
입력 2014-10-29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