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예능 프로에 기미가요라니

입력 2014-10-29 02:41
[친절한 쿡기자] 공든 탑이 무너지게 생겼습니다. 종합편성채널 JTBC ‘비정상회담’의 얘기입니다. 자체 최고시청률 5%를 넘기며 매회 화제를 모으고 있죠.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를 내보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하는 시청자도 적지 않습니다.

27일 방송된 ‘비정상회담’에서는 일본 콘서트 일정으로 자리를 비운 일본 대표 테라다 타쿠야 대신 일본 배우 다케다 히로미츠가 등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경음악으로 기미가요가 나온 것이죠.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7월 7일 ‘비정상회담’이 처음 방송될 때 기미가요가 흘러나온 것이 지금에서야 발견됐죠.

후폭풍은 거셉니다. 시청자 게시판 및 각종 커뮤니티에는 “비정상회담이 ‘비정상’적인 회담 프로그램”이라며 “더 이상 시청하지 않겠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폐지 요구가 빗발칩니다.

이렇게 비난 여론이 거센 이유는 기미가요에 담긴 우리의 아픈 역사 때문입니다. 일본의 국가(國歌)지만 우리에게는 군국주의 침략의 상징일 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기미가요를 강제로 불러야 했던 아픔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노래를 예능프로그램에서 들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광복 이후 스포츠 경기와 외교적 행사를 제외하고 우리 방송에서 기미가요가 나온 것은 처음입니다. 일부 네티즌은 “기록 하나 세웠다. 축하한다”고 비꼬기도 했죠.

방송 직후 쏟아지는 질타에 제작진은 곧바로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28일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부적절한 음원이 사용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음악 작업 중 세심히 확인하지 못한 제작진의 실수”라며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더 주의하겠다”고 사과했습니다. ‘비정상회담’ 제작진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직원의 징계여부와 사과방송 방영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기미가요와 관련한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2009년 일본 방송 TBS ‘링컨’에 출연한 개그우먼 조혜련은 한 출연자가 부른 기미가요에 맞춰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모르고 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거듭 사과했습니다.

2012년 방송된 KBS2 드라마 ‘각시탈’에서도 배우 한채아가 욱일승천기 앞에서 기미가요를 부르는 장면이 방송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드라마의 설정이었지만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죠.

‘비정상회담’은 11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패널로 참여해 토론을 벌이는 콘셉트입니다. 지난 3개월여 동안 어눌한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했던 프로그램입니다. 인기가 많았기에 실망감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혜리 기자 hy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