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변죽만 울리고 고위급 접촉엔 묵묵부답인 북한

입력 2014-10-29 02:50
남북한은 10월말∼11월초 제2차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지난 4일 합의했다. 황병서를 비롯한 북한 최고위급 3인방이 전격적으로 인천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 북한은 남북대화 재개에 높은 관심을 표명했기에 우리 정부로서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대화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북이 보수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트집 잡아 30일 고위급 접촉을 갖자는 남측 제안에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벌써 보름째다.

급기야 북한은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고위급 접촉 재고 가능성을 시사하기에 이르렀다. 북한 매체들은 28일에도 고위급 접촉 제안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했다. 우리 정부는 원칙적으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법적 근거 없이 통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화재개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지난 25일 경찰을 동원해 전단 살포를 사실상 무산시켰다. 북이 우리 정부의 이런 노력을 잘 알 텐데도 연일 대북전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대화 재개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마치 우리 정부가 대화를 애걸복걸하는 듯한 인상을 갖게 만든다. 그것이 북의 노림수일 가능성이 있다. 판을 깨지 않으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본 게임인 고위급 접촉에서 기선을 잡겠다는 전략일 수 있다. 여기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이미 남북이 합의한 대화의 전제조건처럼 내세우거나 도발의 빌미로 삼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북으로서는 김정은 체제를 비난하는 전단이 거슬리겠지만 남북 간에 화해협력 분위기가 조성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문제다.

사실 북한이 비중을 두고 있는 대미관계와 대일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다. 북은 남한을 봉쇄한 상태에서 미국, 일본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 북의 경제사정 등을 고려해 볼 때 남북관계 개선이 급한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대북 5·24조치를 해제 혹은 완화함으로써 남북 간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북한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북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남한에 모종의 대가를 챙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우리 정부는 벌써 7년째 ‘원칙 있는 대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뭐라도 얻어내려면 당장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

어쨌거나 북한의 불응으로 ‘30일 고위급 접촉’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북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모처럼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우리가 앞장서서 무산시킬 이유는 없다. 11월에라도 접촉을 갖는 게 옳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남남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남북 당국 간 교신 내용을 국민들에게 제때 알림으로써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단체들도 남남갈등의 주범인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