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과학기술진흥원 직원 오모(37) 과장이 페이스북에 자신은 역할을 맡았던 한 담당자로서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건물 옥상에서 투신한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정성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가장 죄송한 것은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우리 보물들 ○○이와 ○○(자녀 이름). 아빠가 너무 사랑해. 너무 보고 싶고. ○○야(아내 이름) 정말 미안해. 아이들을 부탁해. 정말 많이 사랑해.”
대한민국에서 소시민으로 태어난 죄로 사랑하는 가족도 지키지 못하고 목숨까지 담보당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정치권은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엄청난 시그널을 받았음에도 전혀 학습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이 생길 때마다 국민 마음속에 사건이 조속히 잊히기를 기다리며 시간 끌기 작전에 나선 것 같아서 씁쓸하다. 어떤 조직이나 국가가 상당 기간 변화 요구에 맞춰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면 이 변화해야 할 대상과 환경 사이에는 변화에 필요한 정보가 선택적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삼투막 현상이 생긴다.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실권자들은 삼투막 현상을 이용해 조직의 근본적 변화 필요성을 부인하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이 방어기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조직의 일반 구성원들은 어느새 세뇌당하여 변화 필요성을 스스로 부인하게 되고 결국 조직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상실해 서서히 죽어간다.
경영학자들은 조직이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서 서서히 고사하는 현상을 은유적으로 ‘삶겨 죽어가는 개구리 현상’이라고 불렀다. 이는 실제 실험을 통해 밝혀진 현상으로, 개구리를 잡아다 냄비 속에 넣고 서서히 열을 가하면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자신이 환경에 충분히 적응하고 있다는 믿음에 갇혀 온도가 비등점이 되어도 뛰쳐나오지 못하고 삶겨져 죽는다.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할 대한민국은 이미 삶겨 죽어가는 개구리였다. 지도층과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방어기제에 빠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동안 소시민들의 삶은 시시각각으로 무너져내리고 있다.
몇 해 전 홈쇼핑에서 캐나다 이민권을 쇼핑 상품으로 내놓자마자 단시간에 매진돼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이민 상품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속마음을 노출시킨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똑 같은 이민 상품을 판다면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은 여력만 된다면 이 상품을 사고 싶을 것이다. 이것이 국민의 속마음이다. 국민 속마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실제로 이민 가고 싶은지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보면 알 것이다.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의사결정자인 지도자들이 책임을 전가해가며 서로 비난하는 동안 실무자가 목숨을 희생해 지켜내는 나라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 대부분의 국민이 실제로 이런 엑소더스를 꿈꾸는 나라라면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이미 세월호처럼 희망 없이 침몰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존재이유이고 정치가들이 정치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존재이유 앞에서 정치적 득실을 따져가며 흥정을 한다는 것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야합을 하는 일일 것이다. 오 과장이란 분이 유서에서 그렇게 간절하게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진정성’은 오히려 위정자들에게 외치는 절규로 들린다. “이제는 제발 정치로 연기하는 삶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의 존엄성과 생명을 지켜주세요!” “정치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사명 앞에 아무런 토를 달지 말고 벌거벗은 채로 서 있을 수 있는 진실된 리더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삼가 고인을 추모합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
[경제시평-윤정구] 이민을 떠나고 싶은 나라
입력 2014-10-29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