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위로

입력 2014-10-29 02:20

힘든 일을 겪고 먼 곳으로 무작정 떠났던 때가 있었다. 취재 때문에 들른 적 있는 땅끝마을의 게스트하우스. 1층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카페였고 2층은 주인아저씨가 손수 지은 다락방 같은 아늑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도 변해 있었다. 주변에 높고 뚱뚱한 숙박업체가 즐비해 있었고 1층 카페는 백반가게로 바뀌었다. 이 작은 마을에도 시간은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머문 첫날, 오후 늦게 기운을 차려 백반가게에 들렀다. 손님 없이 혼자 텔레비전을 보던 아줌마는 작은 담요를 가져와 무릎에 덮으라고 했다. “바닥에 불이 들어오니까 이걸 덮으면 더 따뜻할 거예요.” 그러더니 24가지 반찬이 담긴 백반이 등장했다. 아줌마는 상을 차려주고 잠시 나를 보더니 “힘든 일이 있었나 봐요?” 그러셨다.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아줌마는, 슬그머니 내게 가까이 왔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 세상만사 다 어렵고 힘들어서 혼자 훌쩍 여행을 갔어요. 무작정 버스 타고 가서는 핫도그 하나를 사먹었는데, 그 맛이 지금도 기억나요. 이상하죠? 그땐 너무 힘들어서 그걸 씹는지도 모르고 먹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그 맛이 그리워지는 거야. 요즘은 애들 땜에 떠나지도 못해요. 예전에 아가씨만할 때 언니가 다른 나라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그땐 너무 힘들어서 햇빛도 보기 싫었어.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어요. 1년 가까이 방에서만 지냈어요. 겨우 기운 차리고 살아내려는데 이번엔 남편이 세상을 떠나네. 원래는 누가 싫은 소리 하면 참지 못했어요. 찾아가서 따지고 쏘아붙이고 그랬는데, 그런 일들 겪으니까 뭐든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넘기게 되더라고요. 정 답답하면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하루이틀 사니까 여기까지 왔네. 다시 결혼하고 자식새끼 놓고 살다가 문득 고개 들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싶어요.”

아줌마는 처음 본 사람에게 주책이라며 이따금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위로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지만 추스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마음이라면서. 어쩌면 소중한 것을 잃어본 사람이, 마음을 다쳐본 사람이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곽효정(매거진 '오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