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회적 통념에 한방 먹이며 오롯이 제 목소리를 내 온 가수 신해철. 그가 27일 오후 8시19분 끝내 세상을 떠났다. 46세. 유족으로는 부인 윤원희씨와 두 자녀가 있다.
신해철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는 “신해철씨가 27일 20시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다”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후 1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며, 아직 발인이나 장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도 “신해철은 22일 수요일 오후 2시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 혼수상태로 내원하여 응급수술을 포함한 최선의 치료를 하였으나 27일 20시19분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산소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신해철은 지난 22일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의료진은 심정지에 이른 원인을 찾기 위해 장협착으로 수술을 받은 부위를 개복해 응급 수술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90년대 록 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였다. 끊임없는 음악적 변신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사회성 짙은 가사로 의식 있는 뮤지션으로 평가받았다.
신해철은 서강대 재학 시절이던 1988년 친구들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해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며 이름을 알렸다. 무한궤도 해체 이후인 90년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안녕’ 등 히트곡을 쏟아냈다. 92년 록 밴드 ‘넥스트’를 결성했고, 97년 해체되기까지 4집을 발표했다. 넥스트는 ‘도시인’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먼 훗날 언젠가’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 등 숱한 명곡을 선사했다.
밴드 해체 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과 프로듀싱을 공부했다. 2000년대로 접어든 후에는 넥스트 재결성과 솔로 뮤지션으로서 앨범을 꾸준히 발표했다. 지난 6월 신해철은 오랜 공백을 지나 솔로 6집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신해철은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지도층이라는 표현이 통하는 뮤지션이다. 무한궤도, 넥스트,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등 그때그때 음악적 자아를 새긴 팀으로 1990년대 음악계 최전방을 누비고 다녔다”면서 “세기말의 청춘들은 현실을 리얼하게 드러내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는 신해철과 넥스트의 음악에 동감했고 위로받았다”고 평가했다.
신해철은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소셜테이너’로도 유명했다. MBC ‘100분토론’에 여러 차례 출연해 간통제 폐지를 찬성하거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2002년 대선 당시에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신해철은 자신의 급작스런 죽음을 예상이나 한 것처럼 과거 한 프로그램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유언장을 남겼다. 당시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고 당신의 아들, 엄마, 오빠, 강아지 그 무엇으로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신해철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는 팬과 동료들의 애도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가수 김광진은 트위터를 통해 “신해철님이 세상을 떠났군요.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의 노래와 많은 추억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소설가 공지영씨도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가깝군요. 살아있는 동안 가진 것을 나누고 더 사랑해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누군가의 말을 여기 대신합니다. ‘천사는 지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트위터에 남겼다.
김남중 서윤경 기자 njkim@kmib.co.kr
“신해철, 우리 모두 당신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입력 2014-10-28 0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