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2012년 기준 남성은 78세, 여성은 84세다. 과거엔 60세를 넘기도 힘들어 환갑잔치를 하며 장수를 축하했다. 지금은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100세 시대는 축복이지만 준비 안 된 노년엔 재앙이다.
'100세 시대 은퇴자들의 참여마당: 시니어 어치브먼트(Senior Achievement)'. 지난 7일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한 단체다. 이름부터 뭐 하는 곳인지 궁금했는데 대표를 맡은 사람이 강경식(78) 전 경제부총리다. 1980년대 재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7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을 맡아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리면서 옥고까지 치렀다. 공직에서 물러나서도 각종 포럼과 세미나 등으로 바쁘게 지내는 그를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시니어 어치브먼트를 만든 취지는.
“내가 자랄 때 생각해보면 촌에서 50세만 되면 노인 행세하고 환갑 되면 동네가 떠나가라 잔치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평균 수명이 50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평균 수명이 80대 초반까지 30년 정도 연장이 됐다. 그런데 모든 제도는 아직도 환갑시대에 머물러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니 정부가 대책을 세우긴 하는데 전체적인 시스템은 거기서 못 벗어나고 있다. 정년퇴직이나 교육 시스템, 의료관계 등이 달라져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일회성으로 해서는 안 되고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100세 시대에 맞게 바꿔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시니어 어치브먼트라는 명칭은.
“정통 관료 입장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있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소위 386이 펴는 정책들을 보니 안 되겠다 싶어 어렸을 때부터 경제교육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19년 미국에 JA(Junior Achievement·주니어 어치브먼트)가 만들어졌는데 2002년 JA코리아를 만들었다. JA는 ‘청소년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를 내걸었는데 이와 연결되면 좋겠다 싶어 SA 명칭을 썼다. 그러다 보니 왜 영어를 썼냐는 말이 나와서 우리말로 ‘100세 시대 참여마당’을 붙였다.”
-어떤 일들을 할 계획인가.
“창립 총회할 때까지 2년 정도 생각을 해왔다. 작년 하반기부터 사람들을 모아 진행했는데 톱 다운(Top-down·하향)방식보다 버텀 업(Bottom-up·상향) 방식으로 하려 한다. ‘참여마당’이라 이름 붙였는데 자기 생각을 토로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100세 시대에는 이래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면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는 개방형 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뭘 할거냐고 묻는다면 모른다. 참여한 사람들이 내놓는 것을 봐야 한다.”
-창립 발기인이 1200명인데 어떤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나.
“나이제한은 없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다. 젊은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다. 시니어와 함께 시니어가 될 사람들이 모두 회원이다. 회원 가입을 하려면 온라인으로 소통해야 하니까 스마트폰 번호와 이름만 대면 된다. 지금 홈페이지는 NSI와 연결해 쓰고 있는데 11월 말 독립 사이트를 오픈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4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정부의 노후보장책이 좀더 강화돼야 하지 않나.
“정부가 돈을 주는 것도 좋지만 자기가 벌어먹을 수 있으면 제도로 막아놓은 길부터 열어줘야 한다. 정년퇴직하는 것부터 없애야 한다. 미국은 이미 1960년대부터 연령 제한을 없앴다. TV를 보니 조선왕조 때도 과거에 합격한 사람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86세더라. 이런 것부터 없애는 게 100세 시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시니어 어치브먼트가 내세운 모토는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다. 우리말로 바꾸자면 ‘홀로 같이’다.
“100세 시대는 각자 삶에 대해 자기 책임 하에 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계층에 대해선 있는 사람들이나 정부가 돌봐야 하지만 기본 원칙은 각자 홀로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몇 살까지만 하고 그 다음은 누가 책임진다는 생각은 100세 시대적인 발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고독사가 많은데 젊은 관리들이 돌아다니면서 돌보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동네에 사는 시니어들이 하루 한 번 돌아보고 이들에게 약간의 보상을 해준다면 안정적이면서 비용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안전감시활동이나 인성교육 등을 시니어들이 책임진다면 적은 비용으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은퇴한 사람들을 생산적으로 활동하게 해서 우리나라를 훨씬 좋게 이끌자는 취지다. 그래서 홀로서기를 기본으로 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같이 하자는 거다.”
-오랫동안 경제관료와 국회의원을 했는데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추진한 안정화시책이다. 정부주도 경제운용 방식에서 시장경제, 민간주도 방식으로 전환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인데 경제기획원 차관보를 하면서 중화학공업 축소와 연기, 물가 행정규제 폐지, 수입시장 개방, 관치금융 배제 등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수출 안 하자고 하는 친구가 있다’ ‘물가 올리자는 정신 나간 놈 있다’며 굉장히 불만스러워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도 결국 창원공단을 방문해 중복투자로 비슷비슷한 공장에서 물건 만들어도 안 팔리는 실상을 보고 제가 제안한 방향으로 정책을 지시했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김재익 수석과 함께 더 적극적으로 안정화 시책을 추진했다. 당시 ‘돈의 정당성이 인정받지 못하면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 금융실명제를 하려 했지만 반대가 심했다. 제일 아쉬운 부분은 그때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실명제를 했으면 됐는데 정상적 입법 절차를 거쳐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결국 긴급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정치9단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려 감옥까지 갔다왔는데 무죄선고를 받았다. 많이 억울했을 것 같다.
“그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한다. 경제부총리로 여덟달 반 동안 있었는데 제일 먼저 한 일이 캠코(자산관리공사) 만들어 부실채권 정리하도록 한 것이다. 캠코가 정식으로 사업 시작한 날이 내가 사표 낸 날이었다. 그것이 외환위기 이후 부실을 정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왕에 생긴 부실채권 정리는 캠코가 하고 앞으로 생길 부실채권을 막기 위해선 금융감독체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해 국회에 관련 법안을 냈지만 국회에서 대통령 선거에만 관심이 있어 차일피일 미루다 외환위기를 맞은 뒤에 통과시켰다. 내가 만들어놓은 계획에 의해 외환위기를 수습해놓고 직무유기라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코멘트할 가치조차 없고 소가 웃을 일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석달 남겨놓고 나를 바꾸고 나라가 어려워진 것을 나한테 다 덮어씌운 거다. 희생양을 만들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그냥 뒀다면 소프트랜딩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가혹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당시 우리나라에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한데 대해 나중에 반성을 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남미는 재정적자가 많은 나라들인데 중남미에 쓰는 처방전을 우리나라에 적용한 거는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석 달 동안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한다고 했지만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 같다. 현 경제팀에 조언한다면.
“요즘 세계적인 문제가 빚에서 생기는데 우리나라도 가계부채가 큰 문제다. 당장 경기를 끌어올리는 것보다 하우스푸어, 에듀푸어가 많은데 병 고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구조개혁은 경제 쪽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경제 이외 분야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입시위주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하고 교육도 경쟁체제로 가야 한다. 학생들은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학교간의 경쟁, 선생간의 경쟁은 없어 태평성대를 만들고 공교육을 황폐화시켰다. 기업간의 경쟁을 없애고 소비자들만 경쟁하도록 한 게 계획경제다. 그러다 옛 소련은 망했다. 우리 사회 전체가 돌아가는 데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교육, 의료부문도 시간이 걸리고 시끄럽더라도 열어놓고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1년8개월이 지났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조언을 한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지내놓고 보니 그분들이 그때에 대통령을 함으로써 시대적 과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운이 좋다. 김대중 대통령은 영호남 지역갈등,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를 풀고자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미관계를 복원시켰다. 앞으로 5년간 우리나라에 주어진 제일 큰 시대적 과제는 남북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제는 계속 발전해왔기 때문에 억지로 망치지만 않으면 된다.”
만난 사람=이명희 온라인뉴스부 선임기자 mheel@kmib.co.kr
[인人터뷰] 시니어 어치브먼트 강경식 대표 “100세 시대인데 모든 제도는 환갑시대”
입력 2014-10-29 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