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효과음… 만화… 드라마야? 예능이야?

입력 2014-10-29 02:36
드라마 ‘아이언맨’(사진 위)과 ‘모던파머’는 만화컷과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독특하게 풀어내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현실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최근 드라마들이 극단을 걷고 있다. 만화컷을 넣어 비현실적으로 연출하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지독히 현실적인 내용으로 공감을 얻는 드라마도 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28일 “최근 드라마는 드라마와 예능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벼움’은 독일까 약일까=지난 19일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는 귀를 의심하는 소리들이 나왔다. 연기자의 감정선과 코믹적 장면을 짧은 효과음과 연결했다. 만화컷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SBS 주말극 ‘모던 파머’ 2회에선 유명 웹툰 ‘이말련 시리즈’의 한 컷이 등장했다. 극 중 이민기(이홍기)가 친구들과 함께 하두록리에 들어서 마을 지명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할 때 각 캐릭터를 담아낸 웹툰이 나타났다. 이민기가 배추밭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하늘에서 배추가 내리는 컴퓨터그래픽(CG)도 등장했다.

KBS 수목극 ‘아이언맨’도 마찬가지다. 지난 9일 방송된 9회에선 고비서(한정수)가 차를 몰고 가면서 자신의 회사 사장인 주인공 주홍빈(이동욱)의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을 만화로 표현했다. CG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주인공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할 때면 몸에서 칼이 돋는 다는 설정이 CG로 연출됐다.

KBS 월화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했다. 만화컷 등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출연진들의 행동 자체가 만화 캐릭터 같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만화적 연출이 ‘드라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와 ‘신선하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가족끼리 왜 이래’의 경우 가족드라마라는 점을 무시하고 시청률 때문에 가벼운 웃음만 좇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일도 칸타빌레’도 주인공들의 연기가 억지스럽고 어색하다는 말이 적지 않다. 방송 관계자는 “경쾌함과 발랄함, 웃음에 대한 강박이 지나쳐 나오는 현상”이라며 “드라마 본연의 극적 요소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반면 ‘아이언맨’이나 ‘모던파머’는 소재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보니 혹평보다는 호평이 많다.

모던파머는 방송이 끝난 직후 ‘참신한 시도였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아이언맨’ 관계자는 “창의적인 소재와 이야기다 보니 동화적인 기법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격에 정답은 있을까=방송 관계자들은 만화적 요소의 드라마가 비난을 피하려면 스토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모던파머’나 ‘아이언맨’은 만화적인 내용이지만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현실감 있게 풀어가면서 비난을 피했다.

‘아이언맨’은 인간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상황을 몸에 돋는 칼로 표현했다. ‘모던파머’도 도시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밀려난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농촌이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풀어냈다.

하지만 ‘내일도 칸타빌레’는 주인공들의 성장을 습관적으로 표현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주말을 보낸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대화 주제는 금·토에 방영한 ‘미생’이다. 이 드라마는 첫 방송부터 시청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했지만 실제 직장인들이 느끼는 비애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포세대와 88만원세대로 통하는 청춘과 사회생활로 지친 직장인들의 고단한 정서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윤 교수는 “제작자들이 조급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드라마는 예능이 아닌 만큼 본질에 충실하고 시청자와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