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막막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낯설었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남편은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막내는 지적장애를 앓았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글교실에 나가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이주여성들의 ‘왕언니’로서 상담과 통역, 교재 개발과 시민강의 등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이주여성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이주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서울시봉사상 개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안순화(49·사진)씨의 이야기다.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에서 태어난 중국동포 안씨는 2003년 지인의 소개로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했다. 부푼 꿈을 안고 도착한 한국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안씨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초기에 언어와 문화 차이가 심해 무척 힘들었다”며 “남편과 헤어져 혼자 생활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지적장애아를 키울 자신이 없어 죽을 생각을 수없이 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을 딛고 살아가야 할 자신의 세 아이였다. 아이들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한국어부터 배우기로 했다.
“동사무소에서 너무 친절하게 잘해줬어요.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서 후배 이주여성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안씨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9개국에서 온 이주여성 친구들과 함께 ‘생각나무BB센터’를 만들었다. 센터에서는 ‘이웃언어, 문화알기-우리는 하나’ 중국편 등 5개 국어로 된 다문화 강의 교재와 저소득가구 자녀를 대상으로 한 중국어 워크북을 제작하고,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한 시민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직접 다문화 교재를 만든 것은 처음이다. 자신들이 직접 겪었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유용하고 전국에서 다문화 강의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후배 이주여성들이 저한테 친정 언니처럼 편안하다고 말할 때가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다.”
안씨는 올해 초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편치 못하다. 생계를 위해서는 식당일이라도 해야 하지만 지적장애 아이를 돌보느라 그마저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안씨에게는 꿈이 있다. 이주여성들이 다양한 재능을 발휘해 공연단도 꾸리고 손재주로 만든 공예품도 파는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봉사상 시상식은 28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21명의 수상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신청사 다목적홀에서 열린다. 저소득층 가구를 방문해 도배·장판 교체, 건물 보수 등 집수리 봉사활동은 물론 물품지원 등을 아끼지 않은 15명의 ‘맥가이버봉사단’이 단체 부문 대상을 받는다.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
“언니처럼 편하다고 할 때 가장 보람”… 이주여성 첫 ‘서울시봉사상’ 대상 받는 중국동포 안순화씨
입력 2014-10-28 0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