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가을소풍 풍경이 달라졌다. 학년이 아닌 반별로 소풍을 떠나고 버스나 배 대신 지하철을 탄다. 아무래도 사고 가능성이 더 큰 근교보다 시내 명소를 찾아 체험학습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낳은 풍경이다.
경기도 파주 A여고 1학년 8반 학생들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로 가을소풍을 겸한 ‘1일 체험학습’을 떠났다. 교사 2명과 함께 여의도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인근 신문사를 견학했다. 다른 학급은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관람하거나 놀이공원을 찾았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육청에서 학급별로 체험학습을 진행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학년 전체가 다 가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지역을 찾는 경우도 늘었다. 인천의 B고교 2학년 1반 학생들은 지난주 ‘1일 체험학습’으로 2014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 경기장을 방문했다. 이 학교 교사는 “원래 학년 단위로 진행하려다 반별로 나눴다”며 “학급별로 소풍 형식으로 놀이공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주제를 정해 테마형 체험학습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지난 7월 안전 기준을 강화한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현장체험학습을 하려면 학생·학부모 동의를 얻고 학생 50명당 1명 이상 안전요원을 확보해야 한다. 또 학생 150명 이상의 대규모 활동은 시·도교육청의 안전점검 후 적합 판정을 받아야 실시할 수 있다. ‘근거리’ ‘소규모’ 소풍이 대세가 된 이유다.
인원이 많을수록 안전기준이 까다로워지는 탓에 수학여행 같은 ‘숙박형 체험활동’도 학급별로 나뉘어 운영되는 경우가 늘었다. 전남 순천의 C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27일 서울·부산·대구 등 지역별로 두 학급씩 수학여행을 떠났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김모(14)양은 “세월호 참사가 있어서 그런지 반별로 수학여행 장소가 다르다. 전 학년이 다 같이 가지 못해서 섭섭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D고교는 지난 22일 2학년 전체 학생들이 인천 시내 캠핑장에 모였다. 제주도나 경주 같은 전통적 수학여행지 대신 인근 캠핑장에서 수학여행 행사를 치른 것이다. 2학년 주임교사는 “대규모 인원이 먼 곳으로 이동하기가 부담스러워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대체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지하철 소풍’은 안전하지만 학생들의 피로도는 높다. A여고의 경우 1시간30분이 넘는 거리를 내내 지하철로 이동해야 했다. 담임교사는 “강원도 쪽 문학관이나 소양강댐 등에서 소규모 체험활동을 하고 싶어도 버스 1대 대절 비용이 60만원 안팎에 달해 엄두를 못 냈다”며 “학생 1명당 2만∼3만원의 교통비를 부담토록 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의 안전지침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며 시·도별로 학교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운영하면 된다”면서도 “다만 안전사고를 우려해 학교장 재량으로 근거리 소풍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기획] 배 대신 지하철, 반별로 뿔뿔이… 세월호가 바꾼 소풍 풍경
입력 2014-10-28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