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무시하는 흐지부지 입법예고제 보완을

입력 2014-10-28 02:16
국민의 권리·의무 또는 일상생활과 관련이 있는 법령 등을 제정·개정·폐지할 경우 행정청은 그 취지 및 주요 내용을 예고해야 한다. 이는 행정절차법 제41조에 규정돼 있다. 행정절차법은 국민의 행정 참여를 도모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 투명성 신뢰성을 확보하고 국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이의 일환으로 입법예고 제도를 두고 있다. 입법예고 기간 중 입법안에 관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정부가 입법예고 기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 국민일보 취재 결과 확인돼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에 규정된 입법예고 기간은 최소 40일 이상이다. 그런데 국민일보가 법제처 홈페이지에 올라온 17개 정부부처의 올해 입법예고안 1390건을 분석해 27일자로 보도한 내용을 보면 30%에 달하는 411건이 입법예고 기간 40일을 채우지 못했다. 최소 40일간임에도 달랑 4일간만 알리기도 했다. 부처별로 보면 기획재정부가 압도적으로 많다. 118건 가운데 무려 78%에 해당하는 92건이 예고 기간을 밑돌았다. 말로는 국민과의 소통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무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입법예고 기간을 지키지 않은 것 가운데 사회적 논란 가능성이 있는 법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서민증세 논란을 불러일으킨 담뱃세 인상이나 규제완화 관련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일부러 예고 기간을 줄였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물론 예외조항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법제처장과 협의해 예고 기간을 줄일 수는 있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라는 게 애매모호하다.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너무 크다.

빈번한 예외조항 적용에 대해 전문가들은 입법예고 취지와 거리가 먼 꼼수라고 지적한다. 차제에 입법예고 제도에 대한 실효성을 제고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스위스와 미국은 입법예고 기간이 각각 90일, 60일인 데다 중요 법률의 경우 이 기간이 더 늘어난다고 한다. 우리도 주요 법안의 예고 기간을 연장하고 예외조항을 엄격히 적용토록 하는 방식 등으로 관련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