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애기봉 등탑 철거가 능사였나

입력 2014-10-28 02:34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몇 번을 곰곰 되씹어봐도 패착(敗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경기도 김포 최전방을 지키던 애기봉 등탑의 갑작스러운 철거 얘기다.

군이 밝힌 철거 배경은 안전 문제였다. 국방부시설단이 지난해 11월 각급 부대의 안전진단을 한 결과 등탑이 D급 판정을 받았고, 철골 구조물 하중으로 지반이 약화돼 강풍 등에 의해 무너질 수 있어 철거했다는 요지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런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얼마나 안전하지 않은지에 대한 건축공학적 설명이 없다. 그간 몇 차례 했듯 등탑을 보강한다거나 안전한 새 구조물로 대체하는 게 왜 안 되는지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다. 그저 재건축 계획은 없으며 전망대 같은 관광시설로 개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지난 16일 예고도 없이 철거한 지 6일이나 지난 뒤에야 언론의 채근에 마지못한 듯 내놓은 해명이다.

60년 유서 깊은 인도주의적 점등행사

애기봉 등탑의 역사는 길다. 1971년 해병대 청룡부대가 철골 구조물을 세운 지 43년이나 된다. 점등 행사는 더 오래됐다. 휴전협정 체결 이듬해인 54년 군이 애기봉 소나무에 불을 밝혀 성탄트리를 만든 것이 최초다. 60년 전의 일이다. 이후 개신교와 가톨릭, 불교계에서 거의 매년 행사를 이어가면서 가장 역사가 깊은 점등행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남북 관계에 따라 몇 차례 점등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등탑 자체는 꿋꿋이 자리를 지켜왔다. 노무현정부 때 군사분계선 내 모든 선전수단을 제거키로 한 남북 합의에도 불구하고 등탑은 철거되지 않았다.

등탑 관리권은 물론 군에 있다. 구조물을 처음으로 세운 것도 군이고, 등탑이 서 있는 지역도 군의 허가를 받아야 출입이 가능하다. 그렇더라도 이런 유서 깊은 랜드마크를 철거하려면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게 상식적이다. 오랜 세월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 굳어진 구조물을 사전설명도 없이 느닷없이 철거하는 것은 문화 반달리즘(파괴주의)에 가깝다.

군 관계자는 등탑 철거에 대해 “합참의 심리전과 관련 없는 시설인 만큼 그냥 관광객 안전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배경에 북한의 줄기찬 ‘반공화국 선전시설’ 철거 요구가 작용한 게 분명해 보인다. 국방시설본부의 철거 판단이 내려진 게 지난해 11월이었는데 실제 철거는 지난 10일 북한이 대북전단을 실은 풍선을 향해 고사총 사격을 가한 6일 뒤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 실세들이 내려와 남북회담 분위기가 조성된 상황도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기봉 등탑은 북 체제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저 평소 앙상한 철골로 서 있다가 연말연시나 종교축일에 일시적으로 불을 밝힐 뿐이다. 점등의 의미도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길고 추운 겨울밤, 해가 바뀌는 즈음에 남북이 하나의 민족이란 사실을 기억하며 북한 동포들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인도주의 정신이 근간이다.

대안 있는데도 덜렁 해체한 건 원칙 훼손

문제는 북한 당국의 과민반응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이 이를 들어줬다면 원칙에서의 심각한 후퇴다. 앞으로 북한이 ‘최고 존엄을 훼손한다’며 북 체제에 비판적인 우리 언론을 겨냥한다면 이에도 재갈을 물릴 것인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문제 삼고 나오면 그 역성도 들어줄 것인가. 여러 의문이 뒤따른다.

등탑보다 우리 군과 주민들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북전단 살포도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야 한다. 남북 관계의 변화도 민감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잠시 중단한다고 북한에 자유가 깃들기를 바라는 희망마저 접는 것은 아니다. 등탑을 유지하되 점등기간을 줄이거나 한동안 중지할 수도 있을 터이다. 여러 대안이 남아 있는데 철거를 강행한 것은 아무리 봐도 요령이 부족한 처사다.

올 연말엔 전방의 어둠이 더 짙겠다. 세모에 북의 동포를 생각하고 통일의 희망을 되새기게 하던 역사적 등탑을 졸지에 잃은 마음 한구석은 더욱 어두울 것이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