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은 윤(閏) 9월 초하루였다. 음력(陰曆)으로 그렇다. 지금이야 우리들이 대부분 음력을 무시하고 양력만으로 사는 처지지만, 모두가 쇠고 있는 설이나 추석은 음력이란 것쯤은 다 알고 있다. 더구나 음력 생일을 지키는 한국인도 아직 제법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음력의 윤달은 일정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어느 신문에서 음력 윤달 생일을 가진 사람은 4년에 한 번씩 생일을 맞는다는 기사를 본 일도 있다. 잘못된 설명이다. 양력이 3년 동안은 2월이 28일이지만 4년째에는 29일이 되는 것을 생각해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음력에서 윤달은 일정 간격으로 오는 것이 아니다. 아주 불규칙하다. 5일 전 시작된 음력 9월은 1832년 이후 처음이니 자그마치 182년 만의 윤9월이다. 1832년 윤9월생이 바로 그날을 생일로 기념하려면 자그마치 182년 만에 그 첫 생일을 올 가을에 맞게 될 판이다.
그렇다고 모든 윤달이 이렇게 띄엄띄엄 오는 것은 아니다. 제일 잦은 윤달은 윤5월인데, 대강 12년에 한 번꼴은 찾아온다.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윤5월생은 정확하게 음력 날짜를 맞춰 생일상을 받으려면 대략 12년을 기다려야 할 판이다. 물론 182년을 기다려야 정확한 날짜의 생일을 맞을 윤9월생에 비하면 훨씬 고마운 일이지만.
지난 250년 동안의 윤달을 조사해 보니 윤5월이 제일 많아 21회였지만 그 앞뒤의 달은 10회 남짓, 그리고 윤9월이 2회, 윤10월은 단 한 번(1870년)뿐이었다. 윤11월, 윤12월, 윤1월은 아예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사실에 익숙했던 까닭에 우리 선조들은 아예 “빚은 윤동짓달에 갚아라”는 농담조의 속담을 남기기도 했다. 윤동짓달이란 거의 올 일이 없으니 아무리 빚을 져도 윤동짓달에 갚겠다는 약속이라면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가?
여름에만 윤달이 오고 겨울에는 오지 않는 이유는 지구가 태양 궤도를 도는 속도가 여름과 겨울에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이치를 처음 과학적으로 설명한 것은 17세기 초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에 의해서였지만 우리 선조들은 그 이치는 잘 모른 채 그렇다는 사실만은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그 원리를 활용해 달력을 만들고 사용했던 셈이다. 케플러의 제2법칙이라는 ‘면적속도의 법칙’이 그 이치를 설명해준다.
음력에 윤달을 넣어야 하는 이치는 달력을 계절에 맞추려는 노력에서 비롯한다. 계절은 농사일에도 절대로 중요한데, 음력만으로는 계절을 맞추기가 어렵다. 옛날에는 음력을 사용해야 매일 저녁의 달 크기를 금방 알아 편리했을 테다. 하지만 그렇게 음력만을 쓰다가는 12달이 354일 정도여서 양력의 1년(365일)보다 11일이 모자란다. 그 11일을 3년 모으면 33일이 되니 3년에 한 달씩 더 넣으면 두 달력의 차이가 줄어들지 않겠나? 그래서 덤으로 넣은 한 달이 바로 윤달이다. 물론 더 정확하게는 19년에 7회 윤달을 넣으면 더 방불한 줄 알고, 이 주기를 장(章)이라 불렀다. 장법(章法)이란 19년7윤법을 말한다.
사실 우리가 써온 음력은 음력이기보다는 태음태양력(太陰太陽曆)이다. 그 속의 24절기가 바로 양력으로, 태양 운동 15도에 한 절기씩 넣어둔 것이다. 그래서 음력은 윤달 넣는 규칙을 바로 그 24절기를 기준으로 만들었다. 우리 선조들은 계절을 당장 알 수 있게 음력 속에 양력인 24절기를 넣었고, 윤달 역시 절기(양력) 기준으로 계산해 넣은 것이다.
어쨌거나 선조들은 음력 윤달에는 무슨 궂은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송장을 거꾸로 매달아도 괜찮다”는 표현까지 있다. 뭔지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일들은 윤달에 하면 좋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조상의 산소를 옮긴다거나, 이사를 한다거나, 부모님의 수의를 미리 준비하는 일 등등이 모두 윤달에 하면 동티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삼재(三災)를 피하려 애쓰고, 손 없는 날을 골라 이사도 가는 옛날이었다. 께름칙해 멈칫대던 일이라면 이번 윤9월에 그걸 감행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성래 한국외대 과학사 명예교수
[여의도포럼-박성래] 선조들의 윤달 활용법
입력 2014-10-28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