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南南 충돌] “北 민주화 도움” vs “남북 화해 찬물”

입력 2014-10-27 03:37
최우원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대표가 2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확성기를 손에 쥐고 전단 살포를 막는 인근 주민과 진보단체를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스크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진보단체 회원들이 2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역 부근에서 보수단체로부터 빼앗은 전단 풍선을 칼로 찢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을 향해 보내는 ‘삐라’를 놓고 남한사회가 딜레마에 놓였다. 모처럼 남북 화해 분위기의 단초가 마련된 상황에서 북한 내부의 변화를 유도하려 날려 보내던 전단이 오히려 남남갈등을 촉발시키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대북전단 문제가 한국사회의 보수-진보 대립구도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 이제 국제사회가 인권 등 북한 내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만큼 대북전단의 효과와 방식 등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26일 “현재 전단 살포 행위가 우리 사회의 보수 진영에, 진보 진영에, 북한과 국제사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냉철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만약 ‘북한 내부의 변화’라는 본질적 의미보다 남한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더 큰 행위라면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며 “어떤 경우라도 국론 분열이 초래되는 상황은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단체가 대북전단을 날리려 했던 25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는 이른 아침부터 인근 상인과 주민 100여명이 트랙터를 끌고 모여들었다. 트랙터에는 ‘삐라 날리면 우린 폭탄 맞는다’ 등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 버스가 임진각 주차장에 도착하자 이들은 ‘인간띠’를 만들어 차량 진입을 막아섰다. 일부 주민은 버스에 계란을 던졌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진보단체 회원 20여명은 보수단체의 트럭을 급습해 전단과 풍선을 빼앗아 찢었다. 이 과정에서 진보단체 회원 1명이 업무방해 및 재물손괴 혐의로 체포돼 경기 일산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됐다. 이날 북한으로 날아간 전단은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김포에서 기습적으로 날려 보낸 2만장이 전부였다.

큰 충돌은 피했지만 보수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과거 대북전단이 북한 체제를 맹목적으로 비판하고 남한의 풍족한 생활을 홍보하는 원색적인 내용들로 채워졌다면 최근에는 북한 주민의 가치관 자체를 흔들기 위해 보다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구성된다. 북한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각,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호화로운 생활 등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담긴다.

이런 삐라가 북한사회에 실제 영향을 미칠까.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 김모(27)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가족들로부터 ‘북에서 점점 삐라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고, 탈북하자고 이웃을 독려하는 사람도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전단 내용을 남에게 전하다 적발되면 북한 당국에 처벌되는데도 그렇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통일의 꽃’ 임수경이 남한에서 국회의원이 됐다”는 내용의 전단이 화제가 됐다고 한다.

반면 북한인권한국교회연합 관계자는 “실제 북한에 전단이 일부 떨어지기도 하지만 폐쇄적인 사회이다 보니 주민들이 제대로 읽어보는 경우가 적다”며 전단의 효과에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일을 계속해서 불필요한 소모성 갈등을 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북전단이 남남갈등과 국론분열로 이어지는 상황을 해소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대북 접근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규 우석대 국방정책학과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국민 안전 문제가 걸려 있다. 비공개로 진행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북한 주민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바깥세상을 알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양측 정부가 서로 전단을 보내지 말자고 합의하는 노력도 병행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경 황인호 정수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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