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의 정치학] ‘심리전’의 산물 결국 南南 충돌

입력 2014-10-27 03:24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이 2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띄워 보내려던 대북전단. 연합뉴스

북한을 향한 ‘삐라’(대북전단) 살포를 놓고 남남갈등이 격해졌다. 보수단체들은 대북전단이 북한 정권의 부당성을 주민들에게 알리는 순기능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해 남북 신뢰 구축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전단 살포 때 경기도 연천에서 남북 간 총격 상황까지 벌어지자 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 주민들은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며 ‘살포 저지’ 행동에 나섰다. 정부는 북한에 30일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안한 상태다. 이런 상황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주 임진각에선 25일 하루 종일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대북전단보내기국민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전단을 풍선에 매달아 보내려 하자 인근 주민들이 트랙터까지 동원해 진입로를 막았다. 임진각에서 가로막히자 보수단체 일부는 김포로 이동해 기어이 전단 2만장을 날려 보냈다.

전단을 보내려는 이들은 폐쇄사회 북한의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강조한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26일 “김정은 한 사람의 안위를 위해 진실의 편지를 중단할 순 없다”며 “북한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남남갈등을 일으키는 데 넘어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간헐적으로 반복돼온 대북전단 문제가 ‘태풍의 핵’으로 등장한 건 그만큼 남북관계가 미묘한 시기여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는 등 정권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북한의 반응도 극도로 민감해졌다.

김민규 우석대 국방정책학과 객원교수는 “과거 정부 차원에서 보내던 전단은 한국의 발전상이 주로 담겼지만 현재 보수단체의 전단은 북한 최고지도부의 치부 등을 알려주는 내용이어서 북한이 더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이 28일 북한인권 문제를 본격 논의키로 하는 등 국제사회의 압박 강도가 높아지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대북전단 살포는 일부 단체의 행태로 보아 넘기기 어려운 문제가 돼가고 있다. 최근 대화 재개 조짐을 보이는 남북관계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대북전단의 내용보다 전단을 보내는 행위의 정치적 의미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박근혜정부의 통일 지향 정책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대북전단 살포가 계속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이슈화할 경우 ‘이벤트’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 주민을 향해 띄우는 전단이 남한 사회에 던지는 특정 진영의 ‘메시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단체도 대응에 나섰다. 환경운동연합은 이날 “일부 탈북단체가 수만∼수십만장의 삐라를 공중에 살포하는 건 쓰레기 투기 행위”라며 대북전단 살포 단체 대표를 경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제한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대북전단은 북한이 워낙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인 만큼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암초로 작용할 것”이라며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문제에서 우리 협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정부가 민간단체 대표자들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백상진 전수민 황인호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