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대신 손으로 ‘위대한 노역’… 만추에 만나는 두 작가 전시회

입력 2014-10-28 02:11
금호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박영남 작가의 '고흐와 몬드리안의 합작'. 두 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색면 추상화로 그렸다. 금호미술관 제공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오원배 작가의 '무제'.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풍경을 정통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렸다. 아트사이드 갤러리 제공
깊어가는 가을에 그림을 보면서 사색을 즐기는 것은 어떨까. 마침 만추의 계절에 어울리는 두 작가의 전시가 나란히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11월 9일까지 이어지는 박영남 작가의 초대전 '자기 복제(Self Replica)'와 종로구 자하문로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11월 19일까지 계속되는 오원배 작가의 개인전 '순간의 영속: 그리기의 위대한 노역'이 그것이다.

◇손가락으로 그린 추상의 세계=1980년대 초반 미국 유학길에 오른 박영남(65)은 물감과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오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는 작업에 매달렸다. 몇 년 후 5000달러를 모아 물감을 샀다. 그 비싼 물감을 손에 쥐고 마음껏 캔버스에 문지르던 순간 느꼈던 쾌감과 희열은 이후 30년 가까이 손가락으로만 작업하게 된 계기가 됐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손으로 직접 긋거나 바르는 행위로 서정적인 추상 회화를 그려낸다. 바른 지 15분이 지나면 굳기 시작하는 아크릴 물감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물감이 마르는 속도를 조율하면서 여러 겹을 쌓아 올린다. 물감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다. 지난해 겨울부터는 10호 크기의 캔버스에 선을 긋고 물감을 손으로 바르며 ‘자기 복제’를 했다.

작가는 “내 작품을 내가 복제한다”고 말한다. 작품이 작품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 100점을 이번 전시에 내놓았다. 원래 세로 작품으로 그렸지만 가로로 걸어두는 등 추상 회화의 특성을 살려 자유롭게 전시한다. 1995년 오스트리아 수도원 공방에서 체류하면서 배운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선보인다(02-720-5114).

◇프레스코화에 담은 유럽의 풍경=1980년대 초반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를 다니던 오원배(61·동국대 교수)는 정통 프레스코 기법을 배웠다. 이후 연구교수로 여러 차례 파리에 체류하면서 기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파리에 처음 도착해서 몽마르트 언덕의 호텔방 창문을 통해 경이롭게 본 각양각색의 지붕과 굴뚝의 형상을 정통 프레스코 기법으로 화면에 옮겼다.

작가는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처럼 밑그림을 먼저 그린 뒤 이를 전사지(轉寫紙)에 옮기고 이를 다시 축축한 석고층 위에 대고 선을 그어낸다. 석회가 마를 때까지 보통 20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꼬박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그는 “프레스코에 대해 정의하자면 긴박하고 엄격한 노역”이라고 했다.

크레파스나 파스텔로 그린 듯한 미묘한 색감으로 그려낸 프레스코화 30여점이 전시장에 걸렸다. 그동안 인간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다소 어둡게 그려 왔던 작가의 이전 작품에 비하면 사뭇 다르다. 그는 “벽화의 일종인 프레스코는 엄연히 서양화의 중심인데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교육적인 측면에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02-725-1020).

박영남 전시가 열리는 금호미술관 앞에는 경복궁이 자리하고 있다. 삼청로 입구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풍경이 작가의 작품과 잘 어우러진다. 오원배 작가의 전시가 개최되는 아트사이드 갤러리는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촌에 위치하고 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국립고궁박물관과 청와대 앞을 호젓하고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도 좋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