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26일 대만 통일단체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대만과의 통일에 대해 “확고하고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남아있는 적대감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중국이 홍콩, 마카오에 적용하고 있는 ‘일국양제’를 대만에 도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는 원래 1960년대 대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홍콩 반환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중국은 영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도의 자치’를 허용한다며 일국양제를 홍콩에 먼저 적용했다. 실용주의자 덩샤오핑(鄧小平)의 작품이다.
덩샤오핑 이후 중국 지도자들의 생각은 일관된다. 홍콩의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발전 모습을 보여줘 대만인들의 마음을 얻고, 일국양제라는 통일 모델을 대만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바로 홍콩 민주화 시위다.
홍콩 시위가 드러낸 일국양제의 실상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지난 8월 31일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을 확정지었다. 간접선거로 진행되던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2017년부터 홍콩 주민의 직접선거로 바뀐다. 이것은 2007년 전인대의 결정이었다. 이번에 확정된 구체적인 이행 방안은 1200명의 후보추천위원회에서 ‘2∼3명의 후보’를 낸 다음 주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이들 중 한 명을 선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2∼3명의 후보’는 중국이 말하는 ‘애국인사’여야 한다. 홍콩 시민들은 ‘무늬만 직선제’라며 반발했다. 대학생들이 앞장섰고, 시민들이 뒤따랐다. 시위 초반 지켜보기만 했던 중국 언론들은 공산당의 ‘지침’을 받은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은 “불법시위는 용납될 수 없다” “홍콩 시위로 인한 경제 손실이 3500억 홍콩달러(약 48조원)에 달한다” 등 파상공세를 펼쳤다. 시 주석은 “중앙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 방침과 기본법을 관철하고 홍콩, 마카오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수호할 것”이라며 중국의 입장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대만 중앙연구원 우제민 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의 강압적 태도는 홍콩 민주화 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대만의 반중 정서를 강화할 뿐”이라며 “진짜 선거를 위한 홍콩의 싸움을 통해 중국이 일국양제를 제대로 실시할 의도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홍콩은 물론 대만 시민들이 중국은 자기 영토에서 절대 진정한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中에 민주주의 촉구하는 마잉주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은 지난 6월 경제 잡지 차이쉰(財訊)과의 회견에서 “대만과 홍콩은 완전히 다르며 비교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중국이 홍콩에 적용해온 일국양제 모델은 대만과는 상관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 시위가 한창인 지난 10일 마 총통은 한발 더 나갔다. 대만 건국기념일 연설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법치는 서구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권리”라며 중국을 향해 민주주의의 길을 가라고 촉구했다. 마 총통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며 “30년 전 덩샤오핑이 개혁을 추진하면서 일부 사람들을 먼저 부자가 되게 했듯 이번에도 중국이 홍콩에 먼저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마 총통의 집권 이후 중국과 대만은 ‘차이완(차이나+타이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다. 26일 대만 대륙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대만의 무역량은 1972억2660만 달러(208조6600억원)로 2002년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었다. 양쪽의 항공편은 매주 828편이 운항되고 중국을 방문한 대만 관광객은 516만명, 대만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220만명에 이른다. 2008년 마 총통 집권 이후 중국과 체결된 협정만 21개에 이른다. 뉴욕대 제롬 코언 교수는 뉴스위크에 마 총통의 최근 발언에 대해 “중국과의 공존을 부르짖던 마 총통의 대담한 원칙의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해바라기 그리고 우산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 올 초 대만을 휩쓸었던 ‘해바라기 운동’의 슬로건이다. 대만 학생과 시민은 집권 국민당이 일방적으로 중국과의 서비스무역협정을 밀어붙이려 하자 “대만 경제의 중국 종속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격렬한 시위를 이어갔다. 대만은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40%가량을 중국(홍콩 포함)에 의존하고 있다. 홍콩 입법원(국회)은 지난 3∼4월 23일간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기도 했다. 해바라기 운동 당시 최대 50만명의 시민이 도심을 점거했지만 질서 정연했고 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을 정도로 시민의식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위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지지자를 모으고 시위의 목적을 알렸다. 이번 홍콩의 ‘우산 혁명’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1월 홍콩과 대만의 시민과 대학생 단체들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모인 적이 있었다. 양측의 민주 인사들이 가진 첫 공식 모임이었다. 이후 양측은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콩의 시위가 한창일 때 대만 타이베이에서는 대만인 수천명이 홍콩지지 시위를 열기도 했다. 대만중앙연구원 천이중 연구원은 “이번 홍콩 사태가 양안 관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대만인들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우호적’에서 ‘불만과 우려’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홍콩 시위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지만 대만은 중국 정부의 새로운 숙제로 남게 될 것이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월드 이슈] 中 ‘홍콩 스타일’ 흔들… 대만도 “노 땡큐”
입력 2014-10-28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