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南南 충돌] 북한, 협박·대응 수위 갈수록 세져… 접경지역 ‘삐라 공포’

입력 2014-10-27 02:21

남북은 2004년 6월 4일 두 차례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방송과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6·4합의’를 통해 남북 당국 간 대북전단 살포 행위는 거의 사라졌다. 그 이후 북쪽에선 군 당국이 가끔 대남전단을 내려 보내긴 하지만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 탓인지 그 양은 급격히 줄었다. 남쪽에서는 주로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있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는 2008년부터 활발해졌다. 이전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때는 남북화해 분위기로 전단 살포 활동이 미미했지만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 뒤 남북관계가 얼어붙자 전단 살포 움직임이 되살아난 것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은 전단 살포 활동을 더욱 정당화시켰고, 전단 살포가 정례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대북전단 살포를 둘러싼 갈등은 보수·진보단체 간 충돌 양상으로 옮겨갔다. 매년 경기도 파주, 연천 등 접경지역이 전단 살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북한은 전단 살포 단체에 대해 고강도 협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2년 10월 25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파주 임진각에서 전단 살포를 예고했던 당시엔 북한이 임진각을 항해 포구를 조준하기도 했다. 우리 군 당국이 이를 포착해 경찰이 해당 단체의 전단 살포를 저지하면서 북한의 실제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2년 뒤인 지난 10일 북한은 대북전단을 향해 실제 총격을 가했다.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이 당일 연천에서 132만장의 전단을 23개 풍선에 매달아 살포하자 2시간여 뒤인 오후 4시쯤 북측에서 고사총 10여발을 발사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