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감독시장 패러다임 바꾸는 ‘팬심’

입력 2014-10-27 02:27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지난 22일 한 KIA 타이거즈 팬이 선동열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프로야구에서 감독 선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엔 구단주나 프런트의 일방적인 지시로 사령탑이 교체됐다면 이제는 팬들의 목소리가 감독 선임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최근 한화 이글스 사령탑에 김성근(72) 전 고양 원더스 감독이 임명된 배경을 살펴보면 팬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당초 한화는 내부 승진 쪽으로 가닥을 잡고 새 감독 선임을 준비했다. 하지만 19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단 홈페이지에 김 감독 선임을 위한 릴레이 서명이 이어졌다. 또 “김성근 감독을 한화의 10대 사령탑으로 모시자”고 인터넷 청원을 했다. 더 나아가 한화 본사에도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급기야 서울 종로구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이는 등 구단과 모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한화는 24일 김 감독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날 한화 정승진 사장은 김 감독을 만났고, 다음날 김 감독은 계약금 5억원과 연봉 5억원 등 3년간 총액 20억원 조건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KIA 선동열(51) 감독의 퇴진도 팬들의 영향이 컸다. 선 감독은 3년의 재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KIA와 2년간 총액 10억6000만원에 재계약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군 입대를 앞둔 안치홍에 대해 팀 잔류를 종용하며 임의탈퇴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며 팬들의 분노가 더욱 들끓었다. 결국 선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팬들의 청원 운동이 시작됐고, KIA 팬들도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결국 선 감독은 재신임 6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재계약한 감독이 스스로 사퇴한 것은 프로야구 초유의 일이다. 선 감독은 26일 “재계약을 하면서 고향 팬들이 한 번 더 믿어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팬들의 마음을 보고 내가 감독직을 맡아선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감독 선정의 패러다임이 프런트에서 팬으로 옮겨지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과거엔 팬들의 의견이 구단에 전달되는 경로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제 인터넷 등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다. 또 “팬이 있어야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구단도 인식하고 있다.

이효봉 XTM 해설위원은 “팬들의 의견을 구단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제 자연적인 시대의 흐름”이라며 “팬들도 팀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구단도 팬들의 의견을 긍정적이고 소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