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감독 선정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엔 구단주나 프런트의 일방적인 지시로 사령탑이 교체됐다면 이제는 팬들의 목소리가 감독 선임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최근 한화 이글스 사령탑에 김성근(72) 전 고양 원더스 감독이 임명된 배경을 살펴보면 팬들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당초 한화는 내부 승진 쪽으로 가닥을 잡고 새 감독 선임을 준비했다. 하지만 19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단 홈페이지에 김 감독 선임을 위한 릴레이 서명이 이어졌다. 또 “김성근 감독을 한화의 10대 사령탑으로 모시자”고 인터넷 청원을 했다. 더 나아가 한화 본사에도 전화나 이메일 등으로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급기야 서울 종로구 한화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이는 등 구단과 모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한화는 24일 김 감독의 영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날 한화 정승진 사장은 김 감독을 만났고, 다음날 김 감독은 계약금 5억원과 연봉 5억원 등 3년간 총액 20억원 조건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KIA 선동열(51) 감독의 퇴진도 팬들의 영향이 컸다. 선 감독은 3년의 재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9일 KIA와 2년간 총액 10억6000만원에 재계약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군 입대를 앞둔 안치홍에 대해 팀 잔류를 종용하며 임의탈퇴를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며 팬들의 분노가 더욱 들끓었다. 결국 선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는 팬들의 청원 운동이 시작됐고, KIA 팬들도 서울 서초구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결국 선 감독은 재신임 6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재계약한 감독이 스스로 사퇴한 것은 프로야구 초유의 일이다. 선 감독은 26일 “재계약을 하면서 고향 팬들이 한 번 더 믿어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그러나 팬들의 마음을 보고 내가 감독직을 맡아선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감독 선정의 패러다임이 프런트에서 팬으로 옮겨지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과거엔 팬들의 의견이 구단에 전달되는 경로가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제 인터넷 등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수 있다. 또 “팬이 있어야 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구단도 인식하고 있다.
이효봉 XTM 해설위원은 “팬들의 의견을 구단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제 자연적인 시대의 흐름”이라며 “팬들도 팀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구단도 팬들의 의견을 긍정적이고 소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야구 감독시장 패러다임 바꾸는 ‘팬심’
입력 2014-10-27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