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쳐버리지 못하는 ‘고문’트라우마… 11월 15일까지 ‘죽음과 소녀’ 공연

입력 2014-10-28 02:06
연극 ‘죽음과 소녀’의 한 장면. 로베르또 역을 맡은 배우 양종욱이 연기하고 있다. 바닥에는 빠울리나 역인 양조아가 누워있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1797∼1828)의 작품은 자장가나 세레나데 곡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그가 30년의 짧은 생애 동안 50여곡의 ‘죽음’과 관련된 작품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았던 그의 삶과 더욱 닮아있는데도 말이다.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종로33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되는 연극 ‘죽음과 소녀’는 그의 현악4중주 제목을 차용했다. 작품 속에서 슈베르트는 어떤 장치로 사용될까.

“나는 슈베르트를 되찾게 될 거다. 나는 슈베르트를 다시 듣게 될 거다.”

작품은 1970년대 칠레의 군사독재 시절 당시 고문을 당한 빠울리나가 15년 후 의사 로베르또를 우연히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로베르또가 자신을 고문했다고 확신한 빠울리나는 그를 감금한다. 그러나 빠울리나를 괴롭히는 것은 스스로가 가진 트라우마다. 15년 만에 남편 헤라르도 앞에서 묻어왔던 상처를 꺼내놓아야만 하는 빠울리나는 괴로움을 호소한다. 작품 속에 흐르는 곡 ‘죽음과 소녀’는 빠울리나의 악몽이다.

극본은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72)이 지난 1991년에 썼다. 이번 공연에선 원작 8개의 장면 중 3개의 장면을 선별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무대 장치는 하얀 책상 6개, 철제 의자 2개가 전부지만 탄탄한 대본과 배우들이 선보이는 자연스러운 연기력은 관객을 몰입시킬만한 흡입력을 가졌다. 빠울리나 역의 양조아(31)와 헤라르도 역을 연기하는 손상규(37)가 선보이는 부부 사이의 세밀한 감정 표현이 극 내내 이어진다. 로베르또 역을 맡은 배우 양종욱(35)은 때로는 해설자로, 때로는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표현해내는 1인 다역을 해낸다. 배경음악은 모두 슈베르트의 것이다. ‘죽음과 소녀’ 2악장과 4악장, ‘군대행진곡’ ‘악흥의 순간’ 등이 사용된다.

작품을 무대에 올린 ‘양손프로젝트’는 연출 박지혜(29)와 세 명의 배우로 구성된 소규모 연극 그룹이다. 젊은 예술가 네 사람이 모여 작품을 선정하는 단계부터 기획, 연출까지 공동 작업을 한다. 기존 극단들과는 다른 실험적 행보를 4년째 함께하고 있다. 지난 24일 스페이스111에서 만난 박지혜 연출은 “인간이 가진 트라우마와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며 “이를 어떻게 배출하고 극복해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1만∼3만원(02-708-5001).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