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펀드 고수익 열쇠? 롱런!… 경력 긴 펀드매니저가 ‘名官’, 학벌·전공 무관
입력 2014-10-27 02:37
‘채권왕’이라는 별칭과 함께 세계적 자산운용사 ‘핌코’의 스타 펀드매니저로 활약하던 빌 그로스 펀드매니저는 지난달 경영진과의 불화로 핌코를 떠나 ‘야누스캐피털’로 자리를 옮겼다. 펀드매니저 한 명이 둥지를 옮겼을 뿐인 데도 시장의 반응은 엄청났다. 야누스캐피털 대표 펀드의 자금유입액은 전달보다 5배 이상 늘어난 반면 핌코의 대표 펀드에서는 지난달에만 235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이처럼 펀드매니저의 운용 능력이 펀드의 수익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시각은 일반적이다.
◇서울대 출신? 별다를 것 없더라=그렇다면 높은 수익을 내는 펀드매니저를 가려낼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펀드매니저의 운용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출신 대학의 학벌도, 전공의 종류도 아닌 운용 경력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실제로 국내 주식형펀드 시장에서도 코스피지수를 뛰어넘는 높은 수익률을 내는 펀드매니저들은 대개 ‘구관 명관’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26일 성균관대 경영학과 박영규 교수와 펀드평가사 제로인이 합동 연구한 논문 ‘펀드매니저의 성과를 결정하는 매니저 특성은 무엇인가? 펀드매니저의 학력, 전공, 경력 등과 운용 성과와의 관계 연구’에 따르면 속칭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 펀드매니저들이 우수한 성과를 달성한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었다. 이는 박 교수 등이 2007년부터 2011년 말까지 펀드를 운용해 온 펀드매니저 129명과 그들의 펀드를 분석한 결과다. 서울대 출신은 31.6%, 고려대와 연세대를 합치면 66.9%에 달할 정도로 펀드매니저의 세계에서는 학벌 문턱이 높았다.
하지만 연구 결과 대성학원 대입배치표를 기준으로 구한 이들의 대학·학과 수능 점수와 운용 수익률 사이에는 별다른 상관이 없었다. 대학 갈 때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펀드의 우월한 성과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자산운용사나 고객이 펀드매니저를 선택할 때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관이 명관, 펀드도 ‘장맛’=전공 역시 큰 변수가 되지 못했다.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과목인 재무회계·재무관리 등이 추후에도 재무제표 분석, 기업가치 측정에 유리할 것이라는 가설을 뒤집는 결과다. 석사학위 보유 여부도 운용 성과와는 별 관계가 없었다.
성과와 연결되는 유일한 변수는 운용 경력이었다. 쉽게 말해 경력이 긴 펀드매니저일수록 비교적 높은 성과를 달성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박 교수는 “경력이 오래된 펀드매니저라는 것은 이미 여러 해의 운용성과를 통해서 실력이 인정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무조건 경력이 늘어난다고 성과가 우수하다기보다는 우수한 펀드매니저만이 경력이 길 수 있다는 관점에서 해석돼야 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자산운용업계도 공감하고 있다. 한 매니저가 뚝심 있게 오래 운영하는 펀드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조언이다. 지난 21일 기준 연초 이후 고수익을 달성하는 수익률 상위 펀드들을 살펴보면 펀드매니저들의 근무기간이 업계 평균(5년1개월)을 대체로 상회했다. 허남권 펀드매니저의 경우 한 회사에서만 18년2개월째 근무 중인데, 연초 이후 22.2%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9년을 넘게 근무한 한용남, 김한 펀드매니저의 펀드들도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박 교수 등은 “펀드매니저의 운용 경력이 길수록 ‘성장주’를 선호하는 현상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 논문은 최근 증권학회지에 실렸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