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한·미동맹의 진화와 딜레마

입력 2014-10-27 02:20

한·미동맹이 한반도 안보에만 국한되던 때는 이미 오래전이다. 요즘 미 백악관과 국무부가 한·미동맹에 대해 빈번히 쓰는 표현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 번영의 린치핀(linchpin)’이다. 린치핀은 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으로, 외교적으로는 핵심 동맹국을 지칭할 때 쓰이는 용어다.

23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미동맹은 동북아 안보와 안정, 번영의 린치핀이면서 갈수록 그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한·미동맹이 동북아를 넘어 주요한 국제 현안을 함께 책임지는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미사여구에 마냥 기분 좋아할 일은 아니다. 헨리 키신저 등 현실주의 정치학 대가들에 따르면 나라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근본 동력은 원칙이나 이념이 아니라 장·단기 국가이익이다.

한국의 경우 무엇보다 핵·미사일 등 북한의 안보 위협 제어가 한·미동맹의 이유이자 최우선 목표다. 미국도 북한 미사일의 본토 위협론이 대두하면서 북한 문제에 한국과 어느 정도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에서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면서 미국이 한·미동맹의 초점을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미·일동맹이 이런 길을 걸은 지는 더 오래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의 바탕에는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중국과 긴밀한 경제통상 관계를 토대로 공존을 모색해야 할 우리에게 중국 견제로 초점을 바꾼 한·미동맹은 심각한 딜레마로 다가온다. 지난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재연기가 확정된 제46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지켜보면서 한·미 군사동맹의 진화가 갖는 불안과 갈등 요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양국이 합의한 향후 전작권 전환 조건에는 ‘한반도 및 역내 안보 환경의 안정화’가 포함돼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반도 외에 ‘동북아 안보 상황’이 전환 조건에 포함된 것은 미국의 요구라는 얘기가 나온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 동북아 안보 환경 불안을 이유로 미국이 한국군의 전작권 전환을 계속 연기할 수도 있는 규정이다. 한국군이 미·중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미국이 추진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의 한국 배치도 이런 성격이 강하다. 사드가 배치될 경우 북한 미사일 대응능력이 확고해질 것이라고 우리 군 당국은 내심 반긴다고 한다. 미국도 북한 핵·미사일 능력 향상으로 미 본토와 주한미군 기지가 위험해졌다며 이를 사드의 한국 배치 이유로 댄다. 하지만 사드 같은 고고도 요격체계를 북한 미사일 대응을 위해 중국과 최근접한 평택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최대 탐지거리가 1800㎞인 사드의 지상배치 X밴드 레이더는 중국 주요 지역을 다 커버할 수 있다.

미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관철하려는 방식도 거칠기 그지없다. 중국의 민감한 반응에 한국이 곤혹스러워할 것임을 알면서도 미 당국자들은 사드 배치가 사실상 결정된 것처럼 잇따라 언급했다. 이에 대해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민들에게 (사드 배치는) 복잡한 문제인 만큼 한국 정부가 조용히 합의를 이룬 뒤 국민의 동의를 구하도록 배려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행동은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의 근간이지만 그것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때 효용이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삼는 전략동맹을 추구한다면 한·미동맹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