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14 국정감사 성적표] 피감기관 뻣뻣·불성실한 태도되풀이… “하루만 버티면 된다” 꼼수 대응

입력 2014-10-27 02:09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피감기관장의 도피성 불출석과 불성실한 답변 관행이 계속됐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작은 사진)는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국감에 출석하지 않아 자리가 비어 있다(왼쪽 사진).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15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의 국감에 나오지 않았다(가운데 사진).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10일 정무위 국감장에 나와 보훈처 업무보고를 하게 해달라고 일방 요청해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국민일보DB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와 피감기관의 불성실한 태도는 반복됐다. 자료 제출에 늑장을 부리거나 부실한 내용만 언급하고, 증인 출석까지 거부하는 국감 무시 행태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거나 “알아보겠다” “확인해보겠다” “검토하겠다”는 식의 무성의한 답변만 되풀이했고,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식의 꼼수 대응 역시 여전했다.

국감 피감기관장 중 가장 유명세를 치른 인물은 단연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다. 김 총재는 지난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 참석하기로 했다가 돌연 중국 출장을 떠나버렸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보건복지위원장이 거듭 출석을 요구하자 그는 “27일 오후에 국감을 받겠다”는 내용을 문자로 보내기까지 했다. 도피성 출국 의혹을 받는 상태에서도 국감 출석 날짜까지 멋대로 정한 셈이다.

피감기관장의 국회 모욕 사례는 다른 국감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 15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의 해양수산부 국감에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하루 전날 불출석 의사를 전달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업무보고를 구두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국감 진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불성실한 답변만 내놓다 여야 의원에게서 “공부를 너무 안 했다. 답변이 엉망”이라는 질타를 받았다.

자료 제출을 놓고 국회의원과 피감기관이 벌이는 해묵은 ‘기 싸움’ 역시 개선되지 않았다. 인천공항공사는 국토교통위 소속 새정치연합 김상희 의원이 박완수 사장 선임 과정에서의 낙하산 인사 의혹을 제기하며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사장 응모자 명단’ ‘임원추천위 심사표’ ‘임원추천위 회의 녹취록’ 등 7건을 “이미 파기하고 없다”며 건네주지 않았다. 감사원은 같은 당 이춘석 의원이 20여일 전 요구한 자료를 국감 하루 전인 지난 14일 오후 5시에야 제출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국감 직전 90여개 자료가 왔고 심지어 자원외교 감사현황 등 핵심 자료는 빠졌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무더기 자료 방출 수법이다.

교육부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회의록을, 서울대는 이사회 회의록을 제출하면서 발언자 명단을 삭제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 공사의 도급·하도급 비교표를 제출하며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금액을 적지 않았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국감자료 사전검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감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도록 헌법이 규정한 제도적 장치지만 피감기관의 안하무인격 태도로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거짓 자료를 제출할 경우 주무 장관을 국회로 불러 해명을 요구하거나 관계자 징계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