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김동규가 부르면서 널리 퍼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가락도 그렇지만 가사가 퍽 감동적이다.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로 이어지는 노래가 요즘 국민결혼축가로 떠오른 이유다. ‘10월의∼’는 지난 주말에도 전국 곳곳에서 불려졌겠으나 사실 연중 각광을 받고 있다. 신랑신부의 애틋한 마음이 ‘10월’ 대신 해당 월을 대입하는 가사 변형을 낳은 것이다.
우리에게 애틋하기로 치자면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 간 상호관계만한 게 없다. 이는 분단시대의 한반도에서 늘 거론돼온 최우선 과제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탄생한 이래 통일대박론이 강조되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축이 주요 국가의제(議題)로 등장하는 만큼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우리의 애틋함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다. 남북관계는 좀체 개선될 기미가 없고 한·일 관계는 몇 년째 휘청거리고 있다. 남북 및 한·일 관계의 정상화 없이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현재 북·일 교섭이 진행 중임을 감안하면 한·일 관계 악화는 남북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적잖이 우려된다.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줄곧 대립이 이어진 탓에 반전시키기도 쉽지 않겠지만 한·일 간에는 그간 우호적 기류가 주류였기에 작금의 대립관계는 더욱 아쉽다. 물론 원인은 침략사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그 측근 정치인들의 역사수정주의 입장이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고노 담화에 대한 그들의 이중적 입장은 용인하기 어렵다. 공식적으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하면서 돌아서서는 부인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양국 관계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던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한·일 간 모든 이슈는 외교적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비난만 해서는 해결될 수 없고 대화를 통해 최대한 수용 가능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 올여름부터 양국 간 관계 정상화의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지난 7월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공동으로 대항할 것을 요청했으나 한국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 그간 대일 강경노선을 굽히지 않았던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적지 않은 변화였다. 한·일 관계개선 의지를 한국 정부가 살짝 내비친 것으로 외교가에서는 평가했다.
이에 아베 총리도 관계개선을 원한다는 내용의 친서·메시지 공세를 시작했다. 지난달 19일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비롯해 21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 24일엔 일한의원연맹 누카가 후쿠시로 회장이 방한해 각각의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우선”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이로써 다음 달 10∼11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무너졌다. 문제는, 일본은 아베 총리의 친서·메시지 공세를 통해 한·일 관계 정상화에 노력했지만 한국은 제 주장만 앞세웠을 뿐이라고 외부에 비쳐지게 됐다는 점이다.
원칙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역사적 상흔과 관련된 자존감 훼손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화하고 유연하게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노력은 병행돼야 한다. 현재 중·일 베이징 정상회담이 전망되는 마당이고 보면 한국의 외교적 위상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정상회담은 사전 의제 설정이 필요하겠지만 스탠딩 미팅은 격식 없이도 가능할 것이다. 우선 지금 단계로는 베이징 APEC 때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라고 본다. 만나야 대화가 되고 서로의 의견이 확인될 게 아닌가. 고집 센 외교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우아한 웃음 하나, 미래를 함께 도모하자는 여유 있는 눈빛 한 자락이 이후의 한·일 외교 사안에 대한 지혜로운 도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를 위한 애틋한 마음이라면 그 무엇인들 못할까.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조용래 칼럼] 한·일 北京정상회담 기대난이라지만
입력 2014-10-27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