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유능하게!’ 요즘 내가 강연 주제로 잘 쓰는 문구다.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공부하기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이 제목을 띄우면 청중의 반응이 흥미롭다. “글쎄…” 하는 눈빛이 보인다. 웅성거림도 들린다. ‘착하면서도 유능할 수가 있나’ 같은 혼잣말도 들린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하는 호기심도 느껴진다.
‘착하고 유능하게’의 반대말이 뭘까. ‘사악하고 무능하게, 이악스럽고 탐욕스럽게, 뻔뻔하고 해악적으로, 연줄만 밝히고 일은 제대로 못하고?’ 다들 금방 이해한다. 주변에서 너무도 많이 봐왔고 노상 당해 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사악하고 무능한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자리를 꿰차고 앉아서 이악스럽게 자기 이익만 챙기고 일을 망치고 더 나아가 사회적 손해까지 끼치는 경우가 한두 번인가.
대체 언제부터 유능하다는 말이 ‘자기 이익만 챙긴다’라는 말과 동일시되어 버렸나. 대체 왜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자기 앞가림만 밝히는 사람, 직책 높은 사람, 연봉 높은 사람을 유능하다고 보게 되었나. 언제부터 사악함과 유능함은 어딘지 통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착한 사람은 왜 ‘부릴 수 있는 사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 지시를 잘 듣는 사람, 더구나 이용해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나. 기껏 조폭들이나 ‘차카게 살자’라고 하면서 착함을 조롱하게 되었는가. 권위주의 사회, 독재 사회, 천박한 금·권력 만능 사회를 못 벗어나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다행스럽게도 ‘착하다’의 뜻은 21세기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착한 소비, 착한 기업’이라는 말에서 그 진정한 뜻이 금방 드러난다. 미래를 생각하고, 자원을 생각하고, 지구를 생각하고, 인권을 생각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버는 만큼 나누고, 나누는 만큼 키우고, 스마트하게 사는 게 멋진 삶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 메커니즘을 비판하면서도 성찰적인 논리와 실천적인 창조 정신으로 새로운 기술, 기업, 경제, 가치관을 꿈꾸고 실현하는 착하고 유능한 사람들이다.
관건은, 착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대세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으련다.
김진애(도시건축가)
[살며 사랑하며-김진애] 착하고 유능하게!
입력 2014-10-27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