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예영커뮤니케이션’ 대표 원성삼 권사

입력 2014-10-27 02:31
원성삼 대표는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무명의 저자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그들의 아름다운 동역자가 되어주겠다”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모든 게 그대로다. '출판쟁이' 남편이 밤잠을 설쳐가며 일했던 허름한 사무실 책상이며 의자, 컴퓨터, 하다못해 그가 쓰던 스마트폰까지…. "지금껏 한번도 남편을 잊은 적 없습니다." 예영커뮤니케이션 대표 원성삼(50·거룩한빛광성교회) 권사의 고백이다. 원 권사는 지난 2월 22일 새벽,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전 한국기독교출판협회장이자 예영을 설립한 고(故) 김승태 장로의 아내다. 650여명의 연락처가 들어있는 남편 스마트폰은 딸 하영(24)씨가 쓰고 있다. 지금도 가끔 남편을 찾는 전화가 걸려온다.

1991년 ‘예수님의 그림자’란 의미를 담아 예영을 설립한 이래 김 장로는 평생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문서선교 사역에 올인했다. 돈은 안 되지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면 주위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감행’했다. 무명의 저자를 발굴해 그들을 세우기 위해 그림자로 헌신했다. 김 장로의 소명은 ‘가능성을 가진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이런 어진 마음으로 그가 만든 책이 800여종에 이른다. 이런 공로로 김 장로는 지난 23일 열린 ‘2014 문서선교의 날’ 행사에서 ‘올해의 기독출판인상’을 받았다. 원 권사가 대리 수상했다. 이제 아내가 남편이 못다 한 문서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24일 서울 성북구 예영 사무실에서 원 권사를 만났다. 낡은 2층 주택을 개조해 만든 1층 사무실은 벽마다 세워둔 책장에 책들로 가득했다. 사무실 제일 안쪽이 김 장로가 쓰던 방이다. 원 권사는 전혀 변한 것 없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일하는 게 원 권사에겐 약이다. “남편을 보내고 6월까진 정신없이 보냈어요. 둘째 하영이와 함께 사고 수습하고, 통장을 비롯한 남편 명의로 된 것들 이전해야죠, 출판 등록도 새로 하고 거래처 쫓아 다녀야죠, 저 혼자 이런저런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2011년 4월 큰딸 선영(당시 23세)이를 ‘중증 재생불량성빈혈’로 잃었을 당시 마음의 파장이 너무 컸습니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바쁜 게 나아요. 88세인 친정어머니가 집에 와 계십니다. 그 연세에도 저를 도와주시려고요. 밤늦도록 잠을 못자는 것 빼고는 다 괜찮습니다.”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원 권사는 ‘인생의 쓰나미’를 온몸으로 겪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함께 느꼈다. 일부러 작정한 게 아닌데 새벽 5시면 눈을 떴고 자연스레 그의 시선은 시편 말씀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새벽에 은혜를 받고나면 하루를 시작할 힘이 생겼다. 매일 드리는 새벽 묵상을 통해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았다.

“남편은 정말 쉬지 않고 일했어요. 밤늦게 들어와서도 또 노트북을 켜고 일을 했으니까요. 사고 전날에도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며 10분 만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새벽 2시 넘어서까지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잠깐 눈을 붙이고 6시 조금 넘어 독서모임에 간다고 출발했는데…. (짧은 한숨) 하나님이 남편을 정말 사랑하셨다는 걸 느껴요. 남편에게 ‘너 할 일 다 했다. 좀 쉬어라’며 조금 일찍 데려가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게는 ‘넌 지금껏 뭐했니? 이젠 내가 도와줄 테니 네가 그 일을 해보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원 권사는 ‘출판쟁이’가 아니다. 게다가 집 밖이라곤 버스 타고 교회에 나가는 정도다. 가끔 집에서 교정을 본다거나 디자인 평을 해줄 뿐, 남편의 일터에는 가본 적 없다. 바깥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늘 남편의 그늘 아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조판 빼고는 뭐든 척척 다한다. 책을 기획하고 저자 관리 및 출판 관계자들도 자주 만난다. 오죽했으면 ‘나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를 생각하며 혼자 웃을까. 뒤늦게 배운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도 한창 즐기는 중이다. 단, 운전만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요즘 원 권사가 애정을 갖고 만드는 책이 있다. 조판도 하영씨가 직접 맡았다. 모녀가 공들이는 첫 번째 책은 ‘엄마와 함께하는 바이블 스터디’. 다음 달 출간된다.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원 권사 역시 ‘전신지’라는 좋은 저자를 첫눈에 알아봤다. 원 권사는 “아무래도 내가 세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내용에 더 관심이 갔다”며 “동화책도 내고 싶고 따뜻한 감동이 있는 에세이집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