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의 수다는 ‘뽀로로’로 시작했다. “우리 애는 이제 뽀로로는 뗐어요. 그 전에는 ‘타요’를 좋아하다 30개월째부터 ‘또봇’에 푹 빠져 지내요.” 윤기열(37·공무원)씨가 또봇 이야기를 꺼내자 이준걸(31·서울문화재단 근무)씨는 “요즘 대세는 ‘번개맨’”이라고 응수했다. “막 울다가도 TV로 번개맨만 틀어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더라고요. ‘인어공주’나 ‘라이온킹’도 슬슬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황진철(44·학원강사)씨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는 이제 좀 커서 그림책 보는데.” 다른 아빠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어떤 그림책이 좋아요? 이해하기 쉽고 교훈도 담겨 있으려면….”
보건복지부가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100인의 아빠단’ 소속 열혈아빠 세 명을 26일 서울의 한 키즈카페에서 만났다. ‘100인의 아빠단’은 육아에 관심 많은 아빠 100여명이 모여 야외활동 음악율동 요리 교육 등 5개 분야 육아법을 익히는 복지부 주관 커뮤니티다. 복지부는 ‘애 키우는 아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남성의 육아 참여를 높이고 저출산 문제를 극복해보자며 이 사업을 시작했다. 매주 아이와 함께하는 과제가 주어지고 오랜 육아경험을 가진 ‘멘토 아빠’ 12명이 조언을 해준다. 아빠단 홈페이지에는 매일 30여건의 글이 올라온다. 애가 우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고, 좋은 체험학습 공간을 찾았다며 정보를 공유한다. 올해 4기까지 약 570명 아빠들이 활동 중이다.
‘차차’ 교육법부터 ‘배려’ 육아법까지
30, 40대 남성 셋이 만났을 때 흔히 주고받는 연봉·주식·스포츠 얘기는 이들의 관심 밖이었다. 윤씨는 세영(34개월)이, 이씨는 선율(20개월·여)이와 강희(1개월)를 키우고 있다. 황씨는 선희(7) 윤희(6) 준희(4) 등 딸만 셋이다. 아이를 데려온 이들은 환하게 뛰어노는 애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씨는 지난 5월 아내가 둘째 출산을 앞두고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주말부부였던 윤씨도 비슷한 경우다. 아빠만 보면 울던 아이 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는 지난해 1월부터 10개월간 육아휴직을 했고 지금은 복직했다.
황씨는 둘째 출산 후 우연히 집어든 육아책의 한 구절, ‘지금이 아니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없다’는 대목을 읽고 육아에 나섰다. 그는 “엄마와 달리 함께 격한 운동이나 야외활동을 같이할 수 있다는 게 아빠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아빠들은 각자 연마한 육아 노하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차차’ 교육법을 써요. 아이에게 뭐든지 한번에 가르치기보다 차차 적응하게 하는 거죠.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생일에 사주겠다고 해요. 처음엔 계속 떼를 썼는데 익숙해지니 지금은 ‘저거 갖고 싶지만 오늘 말고 생일에 사줘’라고 합니다.”(윤씨)
황씨는 원칙을 강조했다.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거나 밥 먹을 때 만화 보면 안 된다는 식으로 아이와 미리 합의를 해놓는 게 중요해요. 아빠는 된다 하고 엄마는 안 된다 하면 아이가 혼란스러워 합니다.” 이씨는 집중력이 약한 아이를 위해 ‘배려의 교육법’을 추천했다. 식당에서 아이가 집중해 먹을 수 있는 시간은 20∼30분에 불과하다. 이씨는 “주문 뒤 식당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하면서 아이가 식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육아가 좋은 아빠들의 고민
아이 앞에선 환하게 웃지만 이 아빠들도 말 못할 고민이 많다. 이씨는 복귀 후가 걱정이다. 그는 “공공기관이라 그나마 남성 육아휴직에 관대한 편이지만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에서 도태될까봐 육아휴직을 못 쓴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황씨는 남자가 아이를 키운다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일 때문에 바쁜 아내 대신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 소풍을 따라갈 때마다 다른 엄마들에게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빠들은 “미비한 남성육아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씨는 “남성도 출산 이후 석 달간 의무적으로 휴가를 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육아휴직이 책잡힐 일이 아닌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게 하자는 것이다. 아빠들의 빈자리를 채울 대체인력도 필요하다. 이씨는 “국가 차원에서 프리랜서 등을 육성해 충분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했다.
황씨는 아빠들이 육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창구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공적 육아교육기관이 하나도 없어요. 가끔 주민센터에서 육아 강의를 하는데 세미나에 그치지, 현실적인 내용은 거의 없더라고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윤씨가 기자에게 불쑥 물었다. “아직 결혼 안 하셨죠? 아이는 얼마나 낳을 계획이에요?” 치솟는 양육비와 집값, 비싼 대학 등록금,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때문에 아이 낳기 무섭다고 하자 윤씨는 “아무리 그래도 아이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어렸을 적 우리 아빠의 마음이 이해되더라니까. 상황이 열악해도 어쩌겠어요. 사랑하는 내 아이고 난 아빤데.”
이씨가 거들었다. “저출산 고령사회 해법이 따로 있나요.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육아를 같이하면 그만큼 아이 낳는 부담이 줄어들겠죠. 우리 아빠들은 애기 더 낳고 싶어 해요. 정부가 우리를 위해 최소한의 지원이라도 더 늘려줬으면 좋겠어요.”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복지부 운영 ‘100인의 아빠단’ 소속 세 명이 말하는 육아와 육아휴직
입력 2014-10-27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