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시] 내 품에, 그대 눈물을

입력 2014-10-25 00:15

이정록 (1964∼ )

내 가슴은 편지봉투 같아서

그대가 훅 불면 하얀 속이 다 보이지

방을 얻고 도배를 하고

주인에게 주소를 적어 와서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거야

소꿉장난 같은 살림살이를 들이는 사이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를 부르면

봉숭아 씨처럼 달려나가는 거야

우리가, 같은 주소를 갖고 있구나

전자레인지 속 빵봉지처럼

따뜻하게 부풀어오르는 우리의 사랑

내 가슴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 슬픔마저 알알이 여물 수 있지

그대 눈물의 향을 마시며 나는 바래어가도 좋아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그대 그늘에 다가갈 수 있는

내 사랑은 포도밭 종이봉지야 그대의 온몸에, 내 기쁨을

주렁주렁 매달고 가을로 갈 거야

긴 장마를 건너 햇살 눈부신 가을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