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출판사 한마디] 서해문집

입력 2014-10-27 03:28

하루에 쏟아져 나오는 책이 500권 가깝다지요? 책 한 권 만들기 위해 기꺼이 쓰러지는 나무가 한 그루라고 치면 나무 500그루가 매일 사라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지요. “책이 너무 많이 나와요.”

맞습니다. ‘너무’ 많이 나옵니다. ‘너무’는 부정적인 표현이지요. 만일 진짜 책이 많이 출간된다면 “책이 정말 많이 나와요”라고 하셨겠지요. 출판사를 꾸려나가는 제가 봐도 책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한 권이면 족할 돈 버는 ‘시크릿’이 담긴 책이 수백 가지에 달하니 그게 ‘비밀’일까요? 살 빼는 책이 수십 권 나오면 이제 그만 낼 때도 되지 않았나요? 그런데 연예인들은 오늘도 살 빼는 책의 저자가 되더군요.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를 하는 이는 독자 여러분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네가 내는 책은 과연 나무 한 그루를 벨 만한 가치가 있느냐?’ “예”라고 힘주어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또 책을 냅니다. 나무 한 그루를 벨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록을 목숨만큼이나 소중히 여긴 선조들이 계시기에, 그분들이 그 기록을 우리에게 전해준 절실함을 느끼기에, 그 기록이 수백 년이 지난 오늘 한가하게 살아가는 우리 심장에 비수로 다가와 단 한 번뿐인 삶을 그만한 무게로 살아가도록 채찍을 가할 것을 알기에 책을 냅니다.

조선시대 고전 중에는 엄밀한 기록정신을 보여주는 책들이 많습니다. ‘난중일기’(이순신의 일기)야 말할 필요도 없고 ‘징비록’(류성룡의 임진왜란 종군기)과 ‘간양록’(임진왜란 와중에 포로가 된 강항의 일본 기록)도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치열한 기록입니다. ‘책중일록’(광해군의 줄타기 외교, 그 결과가 생생하다)과 ‘산성일기’(청나라의 침략을 맞은 조선 조정의 현실) 역시 전쟁 기록이지요.

‘조천일기’(의병장 조헌의 명나라 기행문)와 ‘북학의’(청나라 소똥에 감탄한 박제가의 기행문)는 조선의 지식인 사회를 뒤흔든 생생한 기행문이었고, ‘한중록’(혜경궁홍씨, 뒤주에서 죽어간 남편을 위한 제문), ‘매천야록’(죽음으로 한을 푼 황현의 못다 푼 한의 기록), ‘용재총화’(성현, 조선 전기의 삶을 우리에게 전하다) 등도 기록의 힘을 증언합니다.

서해문집 김흥식 대표

국민일보-문화체육관광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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