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모뉴엘 몰락 과정 석연치 않다

입력 2014-10-25 01:00
가전업체 모뉴엘 파장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유망 수출기업이 느닷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한때 자취를 감추는 등 최악의 금융 스캔들로 비화되고 있다. 모뉴엘에 부품을 납품하던 협력업체들의 연쇄 도산 우려 등 피해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의 본질은 회사 측이 수출서류를 조작하고 재무제표를 분식(粉飾)해 부풀린 매출채권을 통해 은행들로부터 6700억원 상당의 자금을 부당 대출받은 것이다.

도대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은행과 무역보험공사(무보), 금융감독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책임소재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일 기습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전까지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감사보고서를 보면 수상한 점이 여럿 발견된다는 점에서 이들 기관의 직무유기는 명백하다. 연 매출에 맞먹는 1조586억원의 매출채권을 넘기고 현금을 조달한다거나 이 정도 규모 회사의 영업활동 관련 현금이 15억원에 불과한 점 등 수상한 내역이 한두 건이 아니다. 이 같은 수법이 금융사나 무보, 금융감독 당국에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 수출금융 지원 시스템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관련 기관들이 업무 협조는커녕 칸막이를 쳐놓고 자신들의 영역에만 매달린 사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 기관의 업무처리 과정에 대해 전면적인 대수술을 하지 않는 한 ‘제2의 모뉴엘’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 와중에 채권을 매입하고 돈을 빌려준 은행들과 채권을 보증해준 무보가 서로 책임공방을 벌이는 행태는 가관이다. 은행들은 “받아야 할 서류는 모두 챙기는 등 여신 심사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인 반면 무보 측은 “은행 측이 현장 확인을 하지 않고 서류에만 치중한 부실 심사를 했다”며 맞서고 있다. 당국은 진상을 철저하게 파헤쳐 책임질 사람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묻고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겠다. 또 협력업체 등 선의의 채권자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