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매너 캠페인’ 아시나요] 우산에서 빗물 뚝뚝, 작품들은 눈물 뚝뚝

입력 2014-10-25 00:30 수정 2014-10-25 15:19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2층의 206번방은 요새처럼 느껴진다. 다른 방에는 허용되던 사진 촬영이 이 방에만 들어서면 금지된다. 뿐만 아니다. 다른 방들과 달리 10개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206-1, 206-2 등으로 불린다. 카메라 촬영은 206-1번방부터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서 사람들은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206-1번방엔 낯선 화가의 그림이 걸려 있는데 도대체 왜 사진을 찍을 수 없을까. 204번, 205번방에 걸려 있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입체파운동을 주도한 후안 그리스와 추상화가 호안 미로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그림도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의혹을 해소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해답은 206-6번방에 있다. 그 방에 걸린 그림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때문이다. 206-6번방에 유일하게 걸려 있는 ‘게르니카’의 사진 촬영을 막기 위해 레이나 소피아 박물관은 206번방에서 아예 촬영을 금지시켰다.

게르니카를 지키는 미술관 직원은 “게르니카의 사진 촬영을 막기 위해 206-1번방부터 사진 촬영을 막는 것”이라고 답했다. 206번방의 사진 촬영 금지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만 있는 에티켓이다.

우리 미술관은 No2, 연필만 사용할 수 있어요=미술관 관람 에티켓의 기본은 다른 사람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동시에 작품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관마다 요구하는 에티켓은 제각각이다.

가령 ‘펜’ 하나만 가지고도 박물관과 미술관에선 각자 다른 이유로 제한하거나 허용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사진촬영을 엄격히 제한하면서도 펜으로 메모하는 것은 허용한다. 때론 그림 앞에 멈춰 서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프라도 측은 눈으로 그림을 감상하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라는 의미에서 필기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아나의 바우어 미술관에선 제한된 필기구만 사용할 수 있다. 일단 볼펜은 무조건 금지다. 사용할 수 있는 건 No2 연필이다. No2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H나 B처럼 미국에서 농도별로 연필을 구분하는 기호다. 이 연필은 미국의 수능인 SAT 등의 필기구로 쓰인다.

반면 벨기에 브뤼셀의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에선 볼펜은 물론 연필만 들고 있어도 직원의 제재를 받는다. 혹시라도 작품에 손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필기구 사용 금지의 이유다.

이러다 보니 관람객들도 헷갈릴 때가 많다. 최근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직장인 김지현(33·여)씨는 레이나 소피아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다.

김씨는 “레이나 소피아에선 206번방을 빼고 모든 곳에서 플래시만 터뜨리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달리 그림을 찍고 있었는데 관람객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말리더라”며 “억울한 마음에 직원까지 불러 오해를 풀었더니 그 관람객이 사과했다”고 말했다.

이 관람객은 김씨에게 맞은편 프라도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해서 레이나 소피아에서도 안 되는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 찾는 갤러리와 달리 미술관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정해진 동선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나름의 규칙을 정할 수밖에 없다.

일단 미술관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있다. 음식물 반입은 무조건 금지다. 음료부터 과자나 빵은 물론 껌도 안 된다. 뒤로 메는 배낭이나 큰 가방도 들어오기 전에 맡겨두고 오는 것이 좋다.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하거나 조각상 등 작품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장은 자유롭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걸을 때 소리가 나는 구두나 힐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작품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미술관 매너다.

아이들과 동행했을 때는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부모들이 신경 써야 하고 휴대전화는 진동으로 하는 것이 좋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작품이 손상될 경우 관람객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해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심하게 손상됐을 경우엔 작품 가격 전체를 미술관이 보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산, 미술관 출입 금지의 숨은 이유=매너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끔씩 박물관이나 미술관 직원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무조건 안 된다고 막기보다는 이유를 먼저 설명한다면 쉽게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지난 8월 국립현대미술관이 시작한 ‘뮤지엄 매너 캠페인’을 의미 있게 보고 있다. 이 캠페인은 미술관을 이용하는 관람객은 물론 미술관 경영자와 예술 창작자, 예술 애호가까지 모두가 미술관 이용과 관람문화의 개선을 고민하고 함께 실천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안영리 운영지원팀장은 “문화예술 공간은 테마파크와는 달리 타인과 스스로를 위해 긴장감을 갖고 즐기는 장소”라며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미술관 에티켓의 숨은 사정을 알려주고 있다.

우선 우산을 코트룸에 맡기고 미술관에 들어가야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긴 우산의 경우 사람들의 동선을 방해할 수 있고 바닥에 떨어진 빗물은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등 위험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습도에 민감한 작품은 우산에 묻은 빗물조차 치명적일 수 있다.

빗물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에는 예상치 못한 위험들이 있다. 경계선을 넘지 말고 감상하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람의 손끝엔 기름이 있고 입에선 끊임없이 열기와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사진 촬영은 다른 이유로 제한하고 있다. 일단 플래시를 터뜨리면 안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강한 빛은 옆 사람의 감상을 방해할 수 있고 작품 손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 자체를 막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저작권 문제다.

안 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여러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사진 촬영이 가능한 곳이 있고 불가능한 곳이 있다”면서 “저작권 문제가 해결됐느냐 안 됐느냐의 차이”라고 말했다.

약간의 긴장을 풀어주는 재미있는 에티켓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클림트의 ‘키스’, 로댕의 ‘키스’처럼 사랑이 샘솟는 커플들의 애정 표현은 다른 사람들이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언제나 지지한다고 강조한다.

유럽의 한 미술관에선 이런 경고 문구로 사람들이 웃으면서 에티켓을 실천하도록 한다.

‘누드화나 조각상을 외설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서도 안 됩니다. 특정 부위를 찍는다거나 웃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랍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