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빈 배와 소음

입력 2014-10-25 00:20
“배를 타고 황하를 건널 때 빈 배가 자기 배에 부딪치면 마음이 좁은 사람이라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그 배에 타고 있다면 불같이 화를 낸다.” 장자 외편 제20편에 나오는 빈 배에 대한 얘기다.

소음도 마찬가지다. 도시생활에서 자동차와 항공기 등의 교통소음은 대기오염 다음으로 건강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로 꼽힌다. 특히 뇌졸중과 심혈관질환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런데 소음으로 인한 불상사는 자동차 경적이나 비행기보다 훨씬 소리가 작은 층간소음에서 더욱 잦다. 교통소음이 특정한 주인이 없는 빈 배라면 층간소음은 소리를 내는 확실한 당사자가 타 있는 배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사람들이 층간소음에 더 민감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층간소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내는 중량충격음이다. 이 소리는 공명 현상을 일으키며 아래층 사람에게 전달돼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공명 현상을 통해 전달되는 중량충격음은 50㎐ 이하의 저주파로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이 내는 포효 소리와 같은 구조다. 맹수들이 포효하는 저주파음은 사람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유발하게끔 최적화되어 있다.

또 하나, 독일 연구진의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미세하게 들리는 저주파음이라도 장시간 노출될 경우 청각에 영구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0초 동안 30㎐ 정도의 저주파 소음을 들려준 후 청각장애를 진단하기 위한 검사 중 하나인 ‘자발 이음향방사’ 검사를 한 결과 3시간 동안이나 청각의 동요가 지속되었다는 것. 고통스러운 소리가 아니라도 청각에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좁은 우리에 갇혀 살아야 하는 가축들은 인위적인 소음에 계속 노출될 경우 번식 효율이 저하되거나 성장 지연, 폐사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동할 수 없는 식물도 인위적인 소음이 높은 지역에서는 묘목 수가 4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한다.

맹수가 포효 소리를 내는 이유는 자기 영역을 확실히 해두기 위해서다. 초기 인류들도 영역 다툼으로 인해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의 각 지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더 퍼져 나갈 수 없이 꽉 들어찬 도시인의 삶에서 뚜렷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층간소음은 무엇보다 큰 스트레스가 아닐까.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